[데스크시각-신종수] 개성공단을 살려라

입력 2013-05-15 19:15


오래 전 개성공단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북측 근로자들은 점심시간이 됐는데도 남은 일을 마저 하느라 한참 뒤에야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은 북측 근로자들과 따로 먹었지만 이들에게 국이 제공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밥과 반찬은 직접 싸온다고 했다. 이왕 인심을 쓰는 김에 밥까지 같이 주지 그러냐고 공단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밥까지 제공하면 기업별로 한 달에 수억원씩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했다.

공단이 가동된 초기만 해도 무엇을 싸왔는지 도시락 뚜껑을 열어놓고 먹지 못하던 북측 근로자들이 형편이 조금 나아져 뚜껑을 열어놓고 먹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고 한다.

소고깃국이 나오는 날에는 상당수 북측 근로자들은 국물만 먹고 건더기는 가족에게 먹이기 위해 빈 도시락에 담아 간다고 했다. 이를 알고 있는 입주기업들은 고기를 듬뿍 넣고 국을 끓였다.

파리했던 북측 근로자들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혈색이 좋아졌고,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훨씬 전에 작업장으로 들어가 일을 했다는 것이다. 간식으로 나오는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가져가 시장에서 팔거나 선물을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단

굶는 북한 주민들에게 고깃국을 주는 개성공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단이었을 것이다. 굶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먹을 것을 달라는 요청을 해야 주겠다든지, 고마움을 모르면 도와주지 않겠다든지 따위의 얘기를 해서도 안 된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입주기업들은 북측 근로자들과 수년을 같이 일해 와 상당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123개 기업에서 일하던 5만3000여명이 실직 상태다.

개성공단은 질식할 것 같은 남북관계에 산소통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모두 공단 정상화를 요구할 정도로 우리 기업들에도 도움이 됐다. 중국공장 임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제품의 품질도 뛰어나다. 입주기업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은 지도 오래다.

개성공단은 2000년 6월 북한 최전방 군부대를 뒤로 물려 배치하면서 조성됐다. 북한 리스크가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박 대통령이 돌파구 마련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개성공단과 관련한 회담을 북측에 제의할 것을 통일부에 지시했다. 대화 제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경분리 원칙 속에서 공단 정상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남북 간 교전이 있더라도 개성공단은 돌아가야 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북 제재에서도 예외가 돼야 한다. 개성공단이 북한 정권의 달러박스라며 공단을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한 측면만 보는 것이다. 세계의 구호단체들도 기부 받은 돈 가운데 일부를 사무국 직원들 봉급을 주거나 본사 건물을 짓는데 쓴다. 직원들은 이 봉급으로 차와 집을 사고 외식을 할 것이다. 기부한 돈이 직원들 외식비로 쓰일 수 있다며 기부를 안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은 그리 많지 않다.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 사건에서 드러났듯 인사에서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새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까지 먹칠을 당했다. 경제 상황을 볼 때 경제 대통령으로 부각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는 게 좋을 듯하다. 남북 문제 해결은 어차피 군사적 방법으로는 안 된다. 기 싸움이나 자존심 대결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다. 솔로몬왕의 판결에 나왔던 친모처럼 대승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는 열쇠가 될 것이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