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벤처붐 일으키려면 대기업 횡포부터 없애야
입력 2013-05-15 19:06
정부가 어제 내놓은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업계 요구 사항을 거의 모두 담은 종합선물세트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벤처기업은 한국 경제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창조경제의 전초병들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벤처기업들이 많이 나와서,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커나가야 나라 경제의 미래가 밝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금융·세제지원을 통해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겠다는 구상은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99%는 자금조달을 융자에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에인절투자와 크라우드펀딩 등 일반인 투자를 유도하고 창업초기 주식시장인 코넥스를 개설하기로 한 것은 벤처기업들의 가장 큰 어려움인 자금조달의 숨통을 터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재도전 기업전용자금을 늘리고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빌릴 때도 연대보증을 폐지해 패자부활을 용이하게 한 점도 눈에 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들도 평균 2.8번 만에 성공한다는데 우리나라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누가 선뜻 창업에 나서고, 누가 지갑을 열어 돈을 투자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대기업들도 한 치 앞이 불투명해 투자를 꺼리고 현금을 쌓아놓는 상황이니 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대 초 벤처붐이 일 때는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IT경기붐이 일어나던 때였다.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 창업 붐을 북돋아줘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들의 인력 빼가기와 기술 탈취로 우량 벤처기업이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데 있다. 밤새워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내고, 획기적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 공세에 벤처기업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벤처기업들을 삼키는 대기업들의 횡포를 근절하지 않는 한 벤처육성은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경제민주화가 함께 추진돼야 할 이유다.
앞으로 5년간 10조6000억원의 벤처투자자금이 풀린다는데 ‘무늬만 벤처’인 좀비기업들이 양산되거나 ‘먹튀’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