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 문방구’ 주연 최강희 “사랑요? 연예인 아니면 좋겠는데… 휴!”

입력 2013-05-15 17:46 수정 2013-05-15 22:21


시골 초등학교 앞 ‘미나 문방구’의 허름한 간판에는 ‘문’자가 떨어져 있다. 아이들은 ‘미나 방구’로 별명을 불렀고, 미나는 아버지가 문방구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20여년 후 경기도의 구청 공무원으로 있던 미나는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억지로 문방구를 떠맡게 된다. 영화 ‘미나 문방구’(감독 정익환)는 한시라도 빨리 문방구를 처분하려는 미나와 ‘초딩 단골’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을 코믹하면서도 눈물나게 그려냈다. 엉뚱 발랄한 ‘4차원’ 배우 최강희(36)는 “쨍하게 내려오는 햇빛 같은 느낌의 영화다. 과하게 순수한 무공해 영화”라고 소개했다.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4차원 매력 최강희=일과 사랑 사이에 고민하는 20∼30대 여성의 감성을 공감이 가게 연기해온 최강희. 이 영화에서는 피곤한 일상에 지쳐 늘 짜증을 내는 캐릭터. “실제로는 이상하게도 화가 안 나는 스타일이다. 화가 나다가 소멸된다고 해야 되나. 이 사람은 이래서 그랬겠지 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지 않고 발끈했으면 좋겠는데, 나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게 싫어 화를 못 낸다.”

늘 따라다니는 ‘4차원’이라는 평가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에는 내가 ‘요술공주’인줄 알았다. 요술봉을 찾겠다며 애들 필통에 있는 펜을 가지고 혼자 화장실에 가서 전부 돌려보기도 했다. 커서는 모르는 사람 집에 갔다가 그 집에 꽂혀서 두 달 동안 지낸 적도 있다. 지나고 나니 그때 왜 그랬나 싶고 쑥스럽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지만 한 번 매력에 꽂히면 저돌적인 면도 있다. “작은 거에 초초해하고 큰 거에 대담한 편이다. 교통사고로 차가 박살났는데 박장대소하고, 볼펜 하나 잃어버리고 나면 집착해서 ‘내 볼펜 봤느냐’고 여기저기 전화하는 식이다.”

어느 날은 훌쩍 아이슬란드로 떠나기도 했다. 친한 친구인 가수 김C가 선물한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헤이마’(‘집으로’라는 뜻) DVD를 보고 이 나라에 푹 빠졌다. “혼자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는데 추진력 있게 밀어붙였다.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사랑에 대해 물었다. “사랑할 때는 연기가 더 잘된다. 그게 아픔이든 행복이든. 그래서 고민이다. 요즘 사랑을 안 하고 있으니까. 연애를 하면 결혼할 나이라 쉽지 않다. 상대가 연예인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연예인 말고는 만날 일이 많지 않다. 휴.”

◇아버지와의 화해 ‘미나 문방구’=시나리오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로맨틱 코미디, 블록버스터, 휴먼 다큐멘터리까지. 그런데 하나같이 공감이 안됐다. 잔칫상에 음식이 수북 쌓여 있는데 뭘 먹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 ‘미나 문방구’는 손쉽게 고를 수 있었다. 읽으면서 힐링이 되는 느낌이 있었다. “바깥에서 인스턴트식품만 먹다가 어쩌다 맨밥을 먹으니 되게 맛있는 것처럼, 나를 잡아당겼다.”

이 영화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자유로운 영혼이셨다. 어쩌다 한번 집에 오고 또 어디론가 떠났다. 항상 낡은 차에 세차도 안하고 구멍 난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최강희는 항상 엄마 편이었다. 엄마는 매일 예쁘게 화장하고 밥상을 차려놓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딸은 아버지가 더 싫어졌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아빠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질구질하게 하고 오면 창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빠가 깨끗한 옷을 입고, 구멍 나지 않은 양말을 신고 왔다. 같이 졸업식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에서 어린 시절 운동회 날 아버지가 사준 운동화를 ‘거지같다’며 안 신고 맨발로 뛰는 장면이 나온다. 최강희는 “영화에서 운동회 날 미나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아버지께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한 듯했고 화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개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며 “서로 늘 응원하지만 표현은 생략되는 사이, 운동회 날 수많은 인파에 가려 들리진 않지만 어디선가 나를 응원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라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