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새 길 걷는 이루마 “보세요, 제 곡 곧 빌보드 갑니다”
입력 2013-05-15 17:31
지난달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교회 파션스키르헤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이루마(35).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 700명은 이루마의 손끝이 빚어내는 음악에 빠져들었다. 일부 관객은 그의 음악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공연은 이루마의 독일 음악시장 데뷔를 알리는 쇼케이스였다. 지난 2월 현지에서 발매된 그의 음반 ‘스테이 인 메모리(Stay In Memory)’는 발매 한 달 만에 1만장 넘게 팔렸다고 한다. 신인이나 다름없는 동양인의 연주 음반이 클래식의 본고장 독일에서 이런 반응을 이끌어낸 건 이례적인 일이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그를 향한 해외의 관심이 독일에만 국한된 게 아니란 점이다. 히트곡 ‘리버 플로우스 인 유(River Flows In You)’는 프랑스에서 지난해 한 TV 광고 음악으로 사용됐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루마는 지난 7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도 쇼케이스를 열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이루마를 만난 건 지난 13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유럽 등지에서도 인기를 얻는 것에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독일 쇼케이스엔 당연히 현지 한국분들이 많이 올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대다수가 독일인이더라고요. 기분이 멍멍했어요(웃음).”
인기의 시작은 2009년 한 외국 네티즌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었다. 영화 ‘트와일라잇’ 장면에 ‘리버 플로우스 인 유’를 삽입한 것으로, 영상과 음악이 절묘하게 어울려 1000만건 넘게 재생될 만큼 화제가 됐다. ‘리버 플로우스 인 유’는 독일 현지 뮤지션들에 의해 댄스 버전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루마는 자신의 음악이 관심을 끄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터넷에 보면 제 음악 악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요. 많은 분들이 악보를 보면서 연주해보는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아요. 노랫말 없는 연주 음악인만큼 가요보다 오히려 이해하기가 쉽다는 점도 큰 몫을 했겠죠.”
하지만 연주자로서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요즘 그의 관심은 연주 음악에 있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가요 작곡가로 ‘인생 2막’을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올해 발표된 가수 백지영의 ‘싫다’, 그룹 2AM의 ‘내게로 온다’ 등을 만들었다. 새로운 길에 대한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열 살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2000년에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가요 작곡가가 꿈이었어요. 연주자의 길은 우연찮게 걷기 시작한 길이었죠. 최근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투페이스(2FACE)와 ‘마인드 테일러(Mind Tailor)’라는 ‘작곡가 팀’을 결성했어요. 앞으로 가요 작곡에 매진할 겁니다.”
이루마는 2001년 데뷔 음반 ‘러브 신(Love Scene)’ 발매 이후 국내 뉴에이지 음악(여러 장르를 융합시킨 연주음악) 계열에선 경쟁자가 없을 만큼 대성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사실상 ‘전업(轉業) 선언’에 준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이루마는 “연주자로서의 삶에 매너리즘을 느꼈다”고 말했다.
“연주음악 위주로 10년 넘게 생활하다보니 지치더라고요. 연주자로서 제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요. 반면 가요 작업은 하면 할수록 재밌더라고요. 제가 만든 멜로디에 각종 악기가 보태져서 멋있게 포장이 되는 게 좋아요. 물론 연주자의 길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죠. 하지만 앞으로 음악 활동에 있어 제가 가진 에너지의 70% 정도는 가요 작곡하는 데 쏟을 거예요.”
이어진 대화는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로서 포부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의 내 음악 생활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가요계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이 정말 즐겁다” 같은 발언이 이어졌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이같이 말했다. “두고 보세요. 제가 만든 곡이 언젠가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올라갈 거예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