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따다 수놓았나 물감 풀어 덧칠했나

입력 2013-05-15 17:13

“눈이 즐겁네”… 항구도시 부산으로 떠나는 ‘夜한 여행’

부산 수영만을 황금색으로 채색했던 태양이 황령산을 넘는다. 색색의 조명으로 단장한 광안대교가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궤적과 어우러져 바다를 가로지르는 은하수로 변신하고, 해운대를 뒤덮은 바다안개는 광안대교 불빛에 석양처럼 붉게 물든다. 밤하늘의 별을 따다 걸어놓은 듯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우뚝 솟은 마린시티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난다. 그 유명한 블루아워의 부산 야경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항구도시 부산이 ‘야(夜)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수영만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마린시티가 경관조명을 밝히기 시작하면 도시는 순식간에 한 송이 거대한 야화로 변신한다. 광안대교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수영만을 오가는 유람선의 불빛까지 더해지면 부산의 야경은 미국 뉴욕이나 홍콩의 밤이 무색할 정도로 화려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광안리 바다에/ 길게/ 누워있습니다// 파도가 하얗게/ 깨어지는 날에는/ 짙푸른/ 몸살을 앓습니다// 밤이면 내 몸의 촉수는/ 오색 가로등으로 달아올라/ 바다를 가르는 은하수가 됩니다// 전조등을 밝히며/ 상판 위를 달리는/ 차량의 물결은 내 몸의 꽃 비늘입니다’(이순선의 ‘광안대교’)

부산의 랜드마크인 광안대교는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시티를 잇는 2층 복층 구조의 왕복 8차선 교량으로 7420m. 현수교인 두 개의 주탑을 중심으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광안대교는 시간대별, 요일별, 계절별로 10만 가지 이상의 다양한 색상을 내는 경관 조명시설을 갖춰 멀리서 보면 캄캄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연상하게 한다.

광안대교는 보는 위치와 각도, 그리고 시간대에 따라 각각 다른 표정을 짓는다. 금련산에서 보는 광안대교는 일직선 모양. 오목한 산자락 위로 보이는 수영만과 광안대교가 수반에 담긴 설치미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해운대 동백섬의 누리마루 APEC 하우스와 광안대교의 모습도 환상적이다. 특히 해질녘 검은 갯바위에 파도가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누리마루 APEC 하우스의 조명은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자동차를 타고 손쉽게 오를 수 있는 황령산도 광안대교를 조망하는 포인트. 광안대교가 S자 곡선을 그리는 황홀한 모습은 두세 시간 올라야 하는 장산 정상에서나 볼 수 있는 장관이다.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에서 조우하는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그리고 센텀시티의 야경은 한 폭의 파스텔화.

광안대교 야경을 가까이에서 입체적으로 감상하려면 해운대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야 한다. 해질녘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선상만찬을 즐기다보면 수영만의 잔잔한 물결에 반영을 드리운 마린시티의 초고층빌딩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오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수면에서 물결 따라 출렁거리는 광안대교의 반영 위로 미끄러지던 유람선이 광안대교 아래를 통과할 때는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한다.

80층 높이의 초고층빌딩들로 이루어진 마린시티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로 바라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 황령산 하늘을 벌겋게 물들인 석양이 지고 나면 마린시티가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 모양새가 바둑판에 놓은 흰 돌과 검은 돌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가 점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린시티의 야경은 잔잔한 바다에 그린 반영 때문에 더욱 황홀하다.

센텀시티에 위치한 영화의전당 빅루프 조명도 부산을 대표하는 야경으로 등장했다. 영화의전당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현장으로 2011년 9월 완공됐다. 오스트리아의 건축설계회사 쿱 힘멜블라우가 디자인한 영화의전당은 영화와 공연을 주제로 한 영상복합문화공간으로, 구름다리로 연결된 3개의 독특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전당에서 가장 특징적인 구조물인 빅루프(Big Roof)는 단 하나의 기둥으로 지탱하는 캔틸레버 구조의 건축물 중 세계 최장의 지붕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을 정도. 빅루프는 길이 163m에 너비 62m, 무게 4000t으로 야외극장 지붕인 스몰루프를 포함해 축구장 1.5배 규모다.

빅루프와 스몰루프 천정에는 모두 4만1832개의 LED 삼색등이 설치돼 일몰 직후부터 밤 10시까지 다양한 영상을 연출한다. 거대한 쌍무지개가 밤하늘에 떠있는 형상의 빅루프와 스몰루프는 가까이에서 볼 때 환상적이지만 수영강 건너 전망대에서 센텀시티와 함께 관람해도 황홀하다. 빅루프와 스몰루프의 색상이 시시각각 바뀔 때마다 수영강의 잔잔한 수면은 색색의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려한 색채를 뽐낸다.

이밖에도 부산에는 신선대부두와 해운대해수욕장, 그리고 마린시티 초고층건물의 옥상 등 야경이 아름다운 포인트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해변에 설치한 가로등이 불을 밝히는 해운대해수욕장은 모래해변은 물론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까지 색색으로 물들어 파도소리에도 색깔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공의 건축물과 빛이 만들어내는 야경에도 품격이 있다. 야경은 완전히 깜깜한 밤보다 푸른 하늘이 돋보이는 일몰 직후가 가장 아름답다. 해가 뜨고 질 때의 짧은 순간을 매직아워라고 한다. 매직아워 중 골든아워는 일몰 직전이나 일출 직후 세상이 황금색으로 물드는 시간을 말하고, 블루아워는 일몰 직후와 일출 직전에 세상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현상을 이른다.

황령산 너머로 가라앉은 태양의 붉은 기운이 스러지기 직전.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그리고 센텀시티의 영화의전당 빅루프와 스몰루프가 푸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나 둘 불을 밝히는 블루아워의 부산 야경은 인상파 화가 밀레와 고흐가 해가 진 직후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은 것처럼 인상적이다.

부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