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20)] 어머니 이어 며느리까지… “우린 Y 가족”

입력 2013-05-15 17:18 수정 2013-05-15 15:35


김윤경 대구Y 증경회장 ‘YWCA와 우리집 대잇기 3대’

우리 집안에서 YWCA 1대 자원봉사자로 활약하신 나의 어머니 고 홍신숙 이사님. 사회복지사업계의 동역자셨던 고 최귀희(대구YWCA 9대, 13대 회장) 회장님의 권유로 1953년 대구Y 회원으로 활동하시다가 63년부터 대구YWCA 이사로 활약하셨고 78년 70세 정년으로 명예이사가 되셨다.

당시 YWCA의 주요 활동이던 여성해방 운동을 통해 남녀동등권을 부르짖으셨고 교육현장에서 여아들을 배제시켰던 봉건주의의 잔재를 없애는 문맹퇴치 운동을 하시는 한편 여성권익 향상 운동의 일환인 혼인신고 독려운동과 축첩폐지 운동 등을 벌였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미미했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도 대구YWCA 회관 건립을 위한 대지 구입부터 6년여에 걸친 회관 건립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활약하셨다.

어머님 세대들은 이처럼 조국 해방과 6·25동란 후 나라의 재건운동을 펼쳐나가듯이 YWCA를 세워 나가셨다.

대추(대잇기추진단) 1대인 어머님은 40대 중후반부터 YWCA 식구가 되셨고 나는 여성을 위한 윗대들의 터닦기에 힘입어 어머니보다 이른 나이인 30대 전후로 YWCA 활동을 시작했다.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서 Y활동을 하게 된 셈이다. 회원운동체 단체인 YWCA가 세월이 가도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회원모집의 특성 덕분이다. 뒷날 내 며느리 이선주(대구YWCA 이사)도 시집오자마자 나의 YWCA 회원 모집 명단에 이름을 올렸음은 물론이다.

60·70년대 여성인권보호운동시대와 여성능력 실현시대를 거쳐 자원봉사가 확산된 80년대가 되면서 YWCA 활동도 순조로워졌다. 국제친선운동, Y틴 학생운동, 어머니합창단 운영, 여성직업교육 개발을 위한 각종 강습반 운영, 아나바다 운동 등 종교운동과 맞물린 사회교육활동을 바탕으로 YWCA는 교회와 사회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체로서 교회 내의 여성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나는 84년 대구YWCA 19대 회장으로 활동하던 때 소비자운동, 어린이Y지도자 강습, 대학Y 활동과 Y할머니반을 운영하면서 Y활동의 범위를 초등학생부터 노년층까지 포괄적으로 확대했다. 노동부의 지원으로 무료직업안내소가 문을 열었고 피부미용관리사반, 가정문제 상담원 훈련을 통해 지도자들을 양성했다. 또 교복 자율화에 따른 중·고등학생 맵시자랑대회 개최, 회원성극제 ‘평화’ 공연 등 Y의 활동도 다양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어머님께서 당신의 사업체와 Y활동을 병행하시며 너무 바쁜 날을 보내실 때 ‘활동을 좀 정비하시지요’ 하고 나는 건의도 드렸다. 그러나 Y회원 운동에 함께한다는 매력, 정의 평화 생명존중의 가치를 위해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아픈 이웃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하는 시민운동체에서 봉사한다는 자부심과 감사함 때문에 내가 이미 Y에서 발을 뺄 수 없는, 한술 더 뜨는 여자가 돼 있었다.

YWCA에 뿌리를 잘 내린 사람들은 YWCA 그 매력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생명의 바람 세상을 살리는 여성’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한 자원봉사자로 보람 있게 활동한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2대로 활약했던 나도 2009년에 명예이사가 됐고, 내 회원 모집에 이름이 등재됐던 며느리 이선주도 3대째 2009년부터 YWCA 이사로 일선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요즘 후배들은 선배들보다 창의적인 시각과 다양한 공부를 한만큼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업적들을 이끌어 내리라 기대한다. 아울러 주 안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대구YWCA에 감사드린다. 또 같은 가치를 바탕으로 온 가족이 한 단체에서 봉사의 유산,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도록 해준 YWCA에 고마움의 말씀을 전한다.

김윤경(대구YWCA 증경회장·1974∼2013 회원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