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美와 조율한 ‘신뢰프로세스’ 적용

입력 2013-05-14 18:35 수정 2013-05-14 22:11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개성공단 완제품 및 원·부자재를 반출하기 위한 회담을 북한 측에 제의하라고 지시한 것에는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문제에 관한 조율을 마친 박 대통령이 한반도 안보 위기 해결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핵심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대로 합의가 이뤄졌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한국식 새판짜기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미묘한 상황 변화도 대화 제의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정부에 따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4월 한 달 동안 군부대 방문을 하지 않았다. 또 이달엔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북한의 대표적 강경파인 김격식이 인민무력부장(우리의 국방장관)에서 밀려났다. 특히 최근 북한에선 개성공단 처리 문제를 놓고 군과 당·내각이 심각한 갈등을 빚은 ‘북북(北北)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전날 “북한 노동당과 내각 수뇌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군부에 반대했다”며 “실직자가 된 근로자들의 불만이 나오자 국가안전보위부를 동원해 근로자 및 가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성명 방식으로 회담을 제의하고 북한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회담 대표도 우리 측은 서호 남북협력지구단장, 북측은 이금철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장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이 회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여전히 개성공단 가동 중단 책임을 우리 측에 돌리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도 ‘조선반도 핵 위기 사태가 주는 심각한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선반도 정세는 조금도 완화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도 “북한과 사전협의는 없었다”면서 “공개적 입장 표명인 만큼 북측이 편리한 방식으로 우리 측에 입장을 전달해 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회담 지시를 한 만큼 성의를 보였고, 북측으로서도 4월 임금 120만 달러(약 13억원)를 받지 못해 추가협의를 해야 한다는 명분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떤 형식으로든 회담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개성공단을 담당하고 있는 북측 중앙특구지도개발총국은 명목상으로나마 근로자 임금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달 3일 끝난 미수금 회담에서도 북한은 박철수 개발총국 부국장이 나왔다. 또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니미츠호(9만7000t급)가 참가한 한·미 연합해상훈련이 이날 오후 종료됐다. 북한이 최근 이 훈련을 트집 잡아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책임을 우리 측에 돌린 것을 감안하면 대화 거부의 빌미가 사라진 셈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