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참모들 고의적으로 尹도피·은신처 제공했나
입력 2013-05-14 18:28 수정 2013-05-14 22:09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방문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 성 추문이 발생한 7일 밤(이하 미국 현지시간)부터 8일 오전까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행적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상당부분 윤 전 대변인의 해명 내용과는 상반돼 있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의 갑작스런 귀국이 사실상 청와대 참모들의 고의적인 도피 결정에 따른 것이거나 적어도 방조한 결과물이라는 정황은 계속 나온다.
◇청와대의 의도적 은닉 의혹=윤 전 대변인이 8일 오후 1시35분 덜레스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워싱턴DC 현지에서 벌어진 상황이 논란의 핵심이다. 청와대의 고의적인 윤 전 대변인 도피 또는 은닉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주미 한국대사관, 주미 한국문화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윤 전 대변인은 오전 7시를 전후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됐다. A씨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한국문화원 여직원으로부터 전해들은 문화원 및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서다. 윤 전 대변인은 이후 전광삼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수차례 통화했다. 비슷한 시간 문화원 여직원은 A씨를 대신해 경찰에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고 전 행정관과 문화원 관계자는 A씨 방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
전 행정관이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한 것은 오전 8시를 넘어서다. 직후 이 수석 등은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윤 전 대변인 귀국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먹칠을 할 수 있어 방미단에서 떼어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 수석은 특히 9시20분을 전후해 만난 윤 전 대변인에게 공식수행원 숙소인 윌러드 호텔 내 자신의 방에 머물라고 했다. 현지 경찰이 피해 여성으로부터 진술을 받던 시간이다. 청와대가 윤 전 대변인의 귀국에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경찰을 피해 은신처까지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고의적인 피의자 은닉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의 조기 귀국에는 본인 의사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혔으나 윤 전 대변인은 이 수석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보고 역시 이 수석이 관련 사실을 안 지 26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이뤄졌다. 어찌됐든 윤 전 대변인 조기 귀국 결정이 내려진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와대 지시를 받은 문화원 관계자가 여권을 윤 전 대변인에게 전달했고 9시54분 항공권 발권이 이뤄졌다. 윤 전 대변인이 문화원이 제공한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택시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7일 밤∼8일 새벽 행적은=윤 전 대변인은 사건 당일 밤부터 새벽까지 자신의 행적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A씨와 윤 전 대변인은 7일 밤 9시30분쯤부터 12시까지 W호텔 지하 바에서 와인 2병을 나눠 마셨다. 1차 성추행(A씨 주장)은 이곳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술자리는 바가 문을 닫은 뒤 로비에서도 계속됐다. “30분가량 가볍게 마셨다”는 윤 전 대변인의 주장과 배치된다. 윤 전 대변인은 숙소 페어팩스호텔로 돌아온 뒤에도 호텔 2층에 마련된 행정실에서 새벽 2∼3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새벽 5시 만취한 그를 봤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8일 오전 6시쯤 호텔 방에서 벌어진 일은 A씨, 윤 전 대변인의 11일 기자회견,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가 각각 다르다. “욕설 섞인 전화를 받고 방에 올라가니 알몸 차림이었다”(A씨 진술) “욕한 적이 없고 샤워 중 벨이 울려 나가보니 A씨가 있어 빨리 가라고 했다”(윤 전 대변인 기자회견) “A씨가 올라왔을 때 속옷을 입지 않았다”(청와대 조사) 등으로 엇갈린다. 일각에선 윤 전 대변인이 뉴욕, 워싱턴에 머물던 사흘간 내내 인턴직원 등과 술을 함께 마셨다는 목격자 얘기도 나온다. 철저한 사실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