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나면 어쩌나… 여보 같이 가자” 80대 부부의 막다른 선택, 국가는 뭐하나
입력 2013-05-14 18:05 수정 2013-05-14 22:13
치매 아내를 4년간 간병해온 80대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유서를 남긴 채 아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령화 사회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들 80대 부부는 평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를 꺼려해 유서에서 ‘이 길이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적었다. 노부부는 국내 30만명에 이르는 노인들이 서비스 받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경북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국골저수지에서 산불 감시요원 J씨(64)가 지난 13일 오후 4시20분쯤 “승용차 한 대가 저수지에 빠져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승용차에서 30m 떨어진 수면 위에서는 할머니 시신이 인양됐고, 수심 3m 저수지에서 2시간여 만에 인양된 차 안에는 할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인근 마을에 사는 A할아버지(88)와 아내 B할머니(83)로 확인됐다. 경찰은 할아버지가 아내를 승용차에 태운 채 저수지에 질주한 것으로 추정했다.
할아버지는 집을 나서기 전 자식 3형제에게 A4용지 1장 크기의 편지지에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내가 먼저 죽고 나면 (아내가) 요양원에 가야 하는데 운전이라도 할 수 있을 때 같이 가기로 했다. 미안하다. 이제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고 힘들다’고 적었다.
경찰에 따르면 노부부는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4년 전부터 주로 저녁 시간에 나타나는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약물치료를 받아 왔지만 “요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버텼고, 할아버지는 묵묵히 헌신적으로 간병을 해왔다. 할머니의 증세는 심하진 않았지만 저녁 때 대소변을 못 가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경우 아내가 요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을 항상 걱정했다. 막내아들 부부도 어머니를 돌보는 데 정성을 다했다. 큰아들과 둘째아들부부는 타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주민들은 “성품이 온화했던 노부부는 금실이 좋았다”며 “수만 평에 이르는 농장을 운영하면서도 인심을 잃지 않았고 자식들도 한결같이 효자였는데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할아버지는 유서에 자식들, 며느리들, 손주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이 길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야 할 가장 행복한 길이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손자가 시험에 합격하도록 빌겠다’고 적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내비쳤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45) 교수는 “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 치매노인 부부가구의 그늘진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며 “노인들에 대한 요양서비스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개인의 욕구나 소득, 가구 특성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가 앞으로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