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군자의 도리
입력 2013-05-14 17:35
“대변인은 업무에 익숙해져야하고 대통령은 그를 잘 알아야 한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명심보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혀 밑에는 도끼가 있다(舌底有斧·설저유부). 말을 잘못하면 그 말이 되돌아와 말을 한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말 말을 아껴야 한다는 말이리라.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긴박성이 있을 때 입을 열어야 한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원도(原道)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는 불교와 노장사상에 취해 도를 잃었다. 도라는 것은 공자와 맹자가 죽은 뒤에는 없는 것이다.” 유학자인 한유는 공맹의 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본래의 사람 모습대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살았던 당나라에도 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한탄 아니겠는가.
동양에서는 완전한 인간의 전형으로 보통 군자를 떠올린다. 군자란 자기 행동은 공손히 하고, 윗사람을 공경으로 섬기며, 백성에게 혜택을 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런 군자는 현실세계에서는 흔하지 않다. 성인이 되는 것이 목표인 유가에서조차 군자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군자의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벼슬길에 나서는 것과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 출사를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지만 출사를 못했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벼슬길에 나서지 않으면 서당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며 도를 닦고 깨우치면 된다. 요컨대 벼슬을 탐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도리란 말이다. 군자란 학문의 깊이를 재며 논하지, 벼슬로 다툼하지 않는 법이다.
일전에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 높은 지역에 간 적이 있다. 큰길을 벗어난 외진 마을 동네 입구에 걸린 대형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이 마을 사람 자제가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이 같은 박사학위 취득 현수막이 한둘이 아니란 사실이다. 동네 곳곳에 걸려있었다. 현대판 학문의 완성이 바로 박사학위라고 할 때 그 마을 사람들의 남다른 자부심에 새삼 놀랐다.
사실 벼슬이란 함부로 받아서도 안 되고 함부로 할 수도 없다. 학문하는 사람은 공부로서 족함을 알면 되고, 벼슬할 사람은 미관말직이라도 자기의 직분에 충실하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바에야 관에 출사해서는 안 된다. 전대미문의 물의를 빚은 전직 청와대 대변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온갖 필설로 남을 괴롭힌 사람은 마땅히 자중자애해야 하거늘 출사가 가당키나 한 행동인지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말과 글은 함부로 쓰고 내뱉을 것이 아니란 고언을 잠시 망각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세치 혀 밑에 파란 도끼날이 있다. 그 도끼는 사람을 죽이고,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를 선택한 사람이다. 군주의 최고의 덕성은 그 신하들을 아는 것이라는 서양의 경구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신하들의 미덕은 주인의 성질을 아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 있고, 군주는 자신에게 충고할 인물을 잘 선택해야 한다. 베이컨의 수상록 ‘충고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서 베이컨은 최선의 충고자는 죽은 사람들, 즉 책이라고 조언한다. 책은 군주들이 듣기 꺼려하는 것까지도 솔직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고르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평소 언행을 보면 대충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선조들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제시한 까닭도 분명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군자의 첫 길은 몸을 닦고 입을 조심하는 것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에서 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마음을 짓눌러, 그 말이 입 밖으로 새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대변인 파문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많은 교훈을 남겼다. 무엇보다 어떤 사람이 공직에 나가야 하며, 공직에 임하는 자세는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