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한 일본신학자의 천황제 비판
입력 2013-05-14 17:35
“우리는 우상으로서의 천황, 그리고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미화시키는 야스쿠니의 사상,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해 싸워야 합니다. 우상화된 권력에 대한 투쟁 없이는 우리의 인권도 자유도 참으로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야스쿠니 반대투쟁을 벌이는 근거입니다.”
위 글은 일본의 대표적인 구약 성서신학자 기다 겐이치(木田獻一·1930∼2013) 전 릿쿄(立敎)대학 교수가 지난 1980년 ‘야스쿠니신사 국영화 반대를 위한 시민 모임’ 결성 10주년 기념강연에서 지적한 것이다. 현재 그의 책 ‘평화의 묵시(1991)’에 ‘자유를 관철하는 삶’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날로 역사왜곡의 강도를 더해가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보수 정치가들의 준동을 보면서 그의 주장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어제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었는데 96년 ‘평화의 묵시’를 우리말로 번역·출판하면서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펼치면서 유독 위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벌써 30여년의 세월이다. 그가 담임목사로 봉직했던 일본기독교단 햐쿠닌초(百人町)교회와 내가 섬겨온 잠실중앙교회(현 잠실희년교회)가 1979년부터 자매교회를 맺어오면서 선생님과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오랜 일본 유학시절을 거치는 동안은 물론 그 이후로도 물심양면으로 사랑을 받았다. 큰 빚이 쌓인 셈이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한·일 문제에서 자칫 자국 우월주의와 같은 스테레오타입에 빠지기 쉬운 젊은 시절의 나에게 일그러진 양국간 근현대사를 신앙의 눈높이에서 비판할 수 있는 눈과 논리를 키워줬다는 점이다. 또한 겉보기엔 문화적 전통처럼 비춰지는 천황제의 본질에 대해 우상화된 권력이라고 갈파한 그의 주장은 내게 일본이해의 원점으로 뿌리내렸다.
‘주체성의 환기(喚起)’야말로 신앙의 정의에 가장 적합하다고 한 그의 가르침은 아직도 가슴에 한 가득 남아 있다. 형제, 부모자녀, 친구, 사회구성원, 한·일 간의 관계에서도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경구다. 어쩌면 작금 벌어지고 있는 일본 아베·자민당의 역주행조차도 일본 시민들이 ‘주체성의 환기’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와 주장을 내세운다면 능히 방향을 달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다. 아쉬움 이상으로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 오늘은 ‘스승의 날’, 떠나가신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