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원·배하나씨 쇼무대에
“이제 시작이죠.” “예. 꿈의 첫 계단에 올라섰습니다.”
최근 패션모델로 데뷔한 이수원(69)·배하나(67) 부부는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며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하던 일도 그만 둬야 할 나이에 새로운 일, 그것도 패션모델을 시작한 이들을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동 본사 휴게실에서 만났다.
“요즘 김천(경북)에선 ‘백구두 잉꼬부부’가 패션모델이 됐다는 게 뉴스입니다. 친구들은 물론 양로원이나 동네에서 만나는 이들마다 우리 부부를 부러워합니다. 하하…”
백구두 잉꼬부부는 이들이 생활한복에 하얀 고무신을 즐겨 신기 때문에 붙은 애칭이란다. 이씨의 자랑에 배씨는 ‘너무 과장하고 있다’며 살짝 눈을 흘겼다. 이씨는 “이 사람은 지나치게 겸손한 게 흠”이라며 김천신문 4일자와 김천시에서 발행하는 ‘함께 사는 김천’에도 우리 부부가 소개됐다고 밝히면서 사실은 그 이전부터 유명했다고 한술 더 뜬다. 남편을 마뜩찮게 쳐다보던 배씨도
“김천이 작은 도시여서 우리 부부가 눈에 띄는 건 사실”이라고 동의했다.
178㎝ 키에 늠름한 체격의 이씨는 물론 키 168㎝에 날씬한 몸매와 서구적인 미모를 지닌 배씨.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은회색 머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이 서울 도심에서도 눈길을 끌만하다. 이들은 외모만 튀는 게 아니라 마음씀씀이도 챔피언 감이다. 샴쌍둥이처럼 함께 다니면서 무엇이든 같이 해 휴대전화도 한대뿐이라는 이들 부부는 몇 해 전 대구 가톨릭의대에 시신기증도 동시에 했다. 배씨가 “쓰일 수 있는 데까지 쓰이고 싶어서 했다”고 하자 이씨는 “무덤 때문에 망가지는 국토도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각종 스포츠댄스 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빼어난 춤솜씨를 가진 이들 부부는 10여 년 째 양로원 장애아동보호소 등에서 봉사를 하고 있어 ‘춤추는 천사’로도 불린다.
스포츠 댄스 얘기가 나오자 배씨는 활짝 웃으며 “이 사람은 몸치, 박치, 음치인데 내가 우울증으로 고생하자 스포츠 댄스를 같이 배우자고 했다”며 고마워했다. 무용을 전공한 배씨는 이씨와 결혼하면서 활동을 접은 채 호스피스 등 봉사활동에만 전념했다. 이씨가 은퇴한 뒤 1996년 이씨의 고향인 김천으로 내려가면서 배씨는 자연주의 식당 ‘구성전원가든’을 시작했다. 하지만 깊게 믿었던 주위 사람들의 배신으로 식당이 어렵게 된 데다 IMF 경제위기(1997년), 태풍 루사(2002년)와 매미(2003년) 등으로 적자가 불어나면서 배씨가 우울증에 걸렸던 것.
‘스포츠 댄스 배울 때 고생께나 했다’는 이씨는 “패션모델에 도전한 것도 이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아내 사랑을 드러냈다. 남편을 위해 무용수의 길을 접은 배씨의 오랜 꿈은 ‘패션 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이씨는 아내와 함께 지난해 11월 뉴시니어라이프의 시니어모델 기초과정에 등록했다. 4개월간 매주 화요일 왕복 8시간 거리를 오가며 워킹, 메이크업, 댄스, 코디 등을 배웠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열공’한 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뉴시니어라이프 주최로 펼쳐진 ‘시니어 패션쇼’에서 드디어 패션모델로 데뷔했다.
“모델 80여명이 등장한 대형무대였는데, 우리 집 사람이 단연 돋보였다”고 이씨가 팔불출을 자처하자 배씨는 “무대 오프닝은 이 사람이 했다”고 남편을 내세웠다. 배씨는 “지팡이를 짚고 왔던 74세 할머니도 이번 패션쇼에서 멋진 워킹을 보여 주셨다”면서 워킹은 자세를 올바르게 해주고, 동선을 익히는 과정에서 머리를 써서 치매도 예방이 되지만 무엇보다 큰 소득은 자신감 회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마침 뉴시니어라이프에서 서울시 후원을 받아 ‘엑티브 시니어모델 2013 선발대회’를 마련하니 한번 도전해보라”고 했다. 예선대회가 31일, 7월 26일, 9월 27일 총 3회에 걸쳐 서울 대치동 뉴시니어라이프 강남캠프 소연홀에서 열린다. 50세 이상 남녀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매회 선착순 30명 마감이므로 서둘러야 한다.
인생 2막을 시작한 이들의 희망사항은 패션모델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영국의 84세 최고령 모델 다프네 셀페처럼 되고 싶다는 배씨가 “앞으로 한복패션쇼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이씨는 “이 사람 한복 입으면 정말 맵시가 도드라진다”면서 그 옆에 나도 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최고령 패션모델 기록 경신에 나선 이들은 ‘나이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미루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멘토가 되고 싶다’면서 “나이가 뭐 어때서”라고 합창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67·69세에 패션 모델 데뷔… “우리 나이가 뭐 어때서”
입력 2013-05-14 17:22 수정 2013-05-14 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