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옛 동독지역 신약실험 수십명 사망”
입력 2013-05-13 19:01
바이엘, 로슈와 같은 거대 제약업체들이 1980년대 말 5만명이 넘는 옛 동독지역 환자를 대상으로 돈을 제공하고 불법 시약테스트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십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슈피겔을 인용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가 작성한 비밀 문건에 따르면 동독 붕괴를 앞둔 1989년 바이엘과 로슈, 셰링, 산도스, 훼히스트 등 서방의 유명 제약 및 화학업체는 동독의 국영병원에 돈을 제공하는 대가로 환자에게 시약테스트를 비밀리에 실행했다.
최소 600여 차례, 5만여명의 환자가 대상이었으며 피해자 대부분은 신약개발의 ‘마루타’(생체실험의 대상자)가 된지도 모르고 있었다. 신문은 바이엘 등이 건당 40만 유로(약 5억7000만원)를 지불했으며 심지어 동베를린의 한 병원에는 무려 300만 유로를 지불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1986년 당시 30세로 피부암으로 숨진 여성도 이 경우에 해당됐다고 전했다. 그의 딸인 니콜 프레이스는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비밀이 있다”면서 “도대체 어떤 약과 어떤 회사가 개입됐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바이엘의 경우 뇌혈액순환 개선제인 니모디핀을 음주자에게 적용한 결과 망상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로슈가 개발한 혈액순환제 에포는 30명의 미성숙아가 태어나는 원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훼히스트가 개발한 혈액순환제 트렌탈로 인해 2명의 환자가 숨지기도 했다.
제약회사가 이렇듯 동독 환자를 대상으로 불법 시약테스트를 시행한 것은 탈리도마이드 사건 때문이다. 탈리도마이드는 1956년 서독에서 개발된 수면제로 이 약의 부작용으로 기형아가 출산되고 5000∼6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유럽 각국은 신약개발에 있어 임상실험을 강화하고 신약 실험 시 반드시 환자에게 미리 알리도록 법제화했다.
하지만 신약개발에 있어 이런 규제는 제약업체의 생산비용을 가중시키는 데다 동독의 경우 만성적인 의약품 부족에 달러화 부족도 불법 시약테스트를 묵인한 원인이라고 신문은 지목했다. 해당 제약사들은 “관련 실험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로 현재는 엄격하게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