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리아’ 된 세종시… 직원들 서울 업무 많아 월세 대신 게스트 하우스 등 이용

입력 2013-05-13 18:41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A과장은 최근 세종시 부근에 얻었던 원룸을 뺀 뒤 보증금으로 중고차를 구입했다. 서울에서 업무가 많아 한 달에 기껏해야 한두 번 자는 방에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것이 비효율적이란 판단에서다. 대신 중고차 트렁크에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넣고 다닌다. 세종시에서 잠을 자야 하는 일이 생기면 2만∼3만원을 내고 인근 한옥마을이나 외국인용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한다.

A과장은 ‘세베리아의 유목민’으로 불린다. 세베리아는 지난해 연말 정부부처가 본격적으로 이동을 시작할 당시 황량한 들판에 혹독한 추위까지 겹쳐 생긴 세종시 별칭이다. 중고차에 살림살이를 싣고 ‘동가식서가숙’하는 처지 또한 유목민과 다를 바 없다.

수많은 ‘세베리아의 유목민’이 등장하는 까닭은 세종시가 행정수도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세종청사에 입주한 경제부처 장관들은 공개일정 가운데 86%를 세종시 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5개 부처 장관들이 취임 이후 수행한 공개일정은 164건이다. 이 중 23건(14%)만 세종시에서 진행됐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경우 취임 후 50일 동안 소화한 공개일정 48건 중 세종시에서 이뤄진 것은 추경예산안 브리핑 1건뿐이었다. 42건이 서울 일정이었다.

현 부총리는 확대간부회의가 있는 월요일을 제외하면 세종청사에 머무르는 일이 드물다. 국무회의(화요일), 경제관계장관회의(수요일), 대외관계장관회의(목요일) 등 각종 회의가 모두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세종시 첫마을에 관사를 구했지만 일요일에만 이용하고 있다.

장관들이 서울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각 부처 국·과장들도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13일 “근무지는 세종시로 옮겼지만 세종시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더 많이 본다”고 한탄했다. 이 때문에 서울청사나 세종청사에 공무원이 임시로 머물 집단숙소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