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칸막이 행정에… 소송가액만 7700억
입력 2013-05-13 18:25
공공기관들의 ‘칸막이 행정’으로 인한 행정력 및 정부 예산 낭비가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부처 간 칸막이 허물기와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공공기관 간 갈등해결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3일 감사원이 공개한 ‘기관 간 업무협조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 사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주요 4개 공공기관의 타 기관 상대 소송 건수는 347건으로 소송가액은 7757억원에 달했다. 이들 기관은 소송 과정에서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만 67억6000만원을 썼다.
공공기관 간 갈등을 예방하거나 중재할 시스템이 부족해 생기는 비용과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 평택교육지원청과 LH는 택지개발사업 과정에서 중학교 운동장 일부가 도로로 편입되자 대체부지 공급가격을 놓고 2년 가까이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 앞 차로와 배수관 공사 등이 늦어졌고, 지난해 7월 폭우가 내렸을 때 통학로와 도로가 침수돼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경찰청은 무면허운전, 교통법규 위반,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내역 등을 관리하는 교통경찰업무관리시스템을 관련 기관에 제공해야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의 시스템 공유 요청을 수차례 거부했다. 이 때문에 2008년 1월∼2011년 9월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27명이 산재보험금 10억4700만원을 부당하게 챙겼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발생한 피해는 업무상 재해 인정 대상이 아니지만, 경찰청의 정보 공유 거부로 가해자의 음주운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이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사업 시행 전 예상되는 갈등을 미리 파악해 예방토록 하고 있는 갈등영향분석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총리실은 2007년 5월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각 부처가 갈등영향분석을 실시하도록 했지만 실제 많은 부처들은 이 규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11년의 경우 국방부·여성가족부·문화재청 등 5개 부처는 1차례씩만 갈등영향분석을 실시했다. 당시 지식경제부와 국가보훈처는 단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국가 예산으로 설치된 각종 조정위원회들도 활동 실적이 극히 미미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 국책사업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행정협의조정위원회는 2000년 5월 설치된 이후 지난해 말까지 약 12년 동안 14건의 갈등만 처리했다. 1년에 1.1건 꼴이다. 지방자치단체 중앙분쟁조정위원회 역시 같은 기간 처리 건수가 12건에 불과했다.
고려대 최흥석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들은 기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행정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각 기관에 협업을 고려해 업무처리 지침을 보완하고, 국무조정실에는 갈등조정 시스템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