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 시스템 정비해 성난 민심 가라앉혀야
입력 2013-05-13 17:52 수정 2013-05-13 22:25
홍보수석 교체하고 주미문화원 여직원 사직 경위 규명을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1호 인사인 윤창중씨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민주당 지도부와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하면서 장·차관급 부실인사 논란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으나, 국민들을 상대로 사과하기는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피해 여학생과 부모, 재미동포들에게도 사과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과 공직기강 재확립을 다짐했다.
박 대통령 심정은 참담할 것이다. 윤씨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발탁한 뒤 ‘불통인사’ ‘깜이 안 되는 인사’라는 지적이 쏟아졌음에도 청와대 초대 대변인으로 중용해 결국 국격을 추락시키고 국정운영에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첫 한·미 정상회담 성과는 실종됐다. 여론을 무시한 인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박 대통령은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사과를 계기로 심기일전하려는 모습이다. 인사 시스템은 물론 이번 사태 처리 과정에서 무기력증을 드러낸 청와대의 위기관리 시스템도 정비할 태세다. 그러면서 내심 국면 전환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아쉽고 미진한 부분들이 있다.
박 대통령의 사과 형식부터 그렇다.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보다 박 대통령은 강도 높은 사과를 했다. 그러나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들 앞에 직접 섰어야 옳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전날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과했더라도 박 대통령의 간접 사과로는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가 힘들 것 같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의 사의를 즉각 수용하지 않은 점도 유감이다. 이번 파문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윤씨의 ‘도피성 귀국’ 여부다. 윤씨는 이 수석이 귀국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수석은 윤씨가 개인적 판단에 따라 귀국했다고 말했다. 정반대의 증언이다. 윤씨에 따르면 이 수석은 “재수 없게 됐다”는 표현까지 썼다고 한다. 이렇듯 이 수석이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만큼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이 수석을 경질했어야 했다. 가뜩이나 이 수석이 학교 후배인 ‘실세’의 지원을 받고 있다거나, 청와대 수뇌부의 지시를 받고 윤씨에게 귀국을 지시했다는 등의 추측과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사태가 더 확산되기 전에 홍보수석을 교체해야 한다. 그래야 공직기강도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윤씨의 성추행 의혹을 미국 현지 경찰에 신고한 주미 한국문화원 여직원이 사직한 점은 석연치 않다. 원래 박 대통령 방미 행사가 끝나면 그만둘 예정이었다는 게 한국문화원 측 설명이다. 하지만 외압이나 한국문화원 측의 소극적 대응 때문이라는 시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윤씨 사건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선 안 된다. 청와대는 한국문화원 여직원 문제도 말끔하게 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