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종시 이대로는 자리 못잡는다

입력 2013-05-13 17:50

세종특별자치시로 주요 경제 부처들이 이전한 이후 장관은 서울에, 과장은 길바닥에, 사무관은 세종시에 있다는 자조 섞인 공무원들의 이야기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애초부터 행정효율보다는 지방균형발전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이전을 단행한 마당에 아직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말만 많지 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휴대전화에도 화상통화 기능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IT천국이다. 문제는 이런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세종시에서 먼 서울을 오가며 길바닥에 아까운 기름을 쏟아 붓고 다니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에 있다. 지난 9일에야 서울의 정홍원 총리와 세종청사의 총리실 간부들 간 영상으로 실질적인 첫 회의를 한 것이 단적인 예다. 디지털 행정문화 정착을 위해 아무 부처도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서울에서 통근버스로 세종시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은 하루 4∼5시간을 버스에서 보내다 보니 허리 통증이 심하다고 하소연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도시를 만들었으면 공무원들이 앞장서 이주하는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출퇴근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국민의 혈세로 생활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시설이 부족한 도시에 들어와 거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하물며 갑자기 이전한 것도 아니고 오랜 세월 준비한 것인데 그런 불만을 표출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영상회의를 활용해도 서울 출장이 잦을 경우에는 장관과 차관 실·국장의 권한을 과감하게 과장급 이하로 넘기는 분권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장관이 부처의 모든 일을 아는 것도 아닌 바에야 국정목표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급자에게 위임하는 것이 효율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말로만 떠들던 책임총리제와 책임장관제를 실천에 옮길 적기다.

정부 출범 초기인 탓도 있겠지만 자기 책임 하에 소신 있게 처신하는 국무위원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 세종시 기능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한우소비촉진행사와 농식품수출탑 시상식을 꼭 서울에서 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민간인이 참여하는 행사라면 오히려 세종시에서 열어야 지역발전에도 도움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 아닌가.

장관들이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는 가급적 줄이고, 필요하면 영상회의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적인 대면문화부터 서서히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꼭 얼굴을 봐야 직성이 풀리고 행정이 잘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세종시의 자립은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