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의 기적] “방과후 기댈곳 없는 아이들 손을 잡아주세요”

입력 2013-05-13 17:30


지역아동센터 ‘행복한홈스쿨’

“소극적이고 신경질적이었던 제 성격이 바뀌었어요. 홈스쿨 선생님이 가정방문도 해주시고 학교도 찾아와주세요. 졸업식 입학식도 오셨고요. 홈스쿨 선생님은 제2의 엄마예요.”

경남 마산의 한 낡은 상가 3층의 ‘푸른물결행복한홈스쿨’. 낡고 어두운 외관과 달리 교사들의 정성이 곳곳에서 보이는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소희(가명·12)양은 홈스쿨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찾았다. 소희양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후 시골 할머니에게 맡겨졌다가 지금은 새엄마와 살고 있다. 아무 설명도 없이 새로운 환경에 놓인 소희양은 언제나 불안해했다. 웃음을 잃고 친구들도 사귀지 못해 늘 혼자였던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회를 통해 행복한홈스쿨에 왔다.

가정사를 밝히고 싶지 않아하던 소희양도 홈스쿨 교사에게만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교사의 상담과 도움으로 소희와 엄마는 5년 만에 속내를 다 쏟아놓는 치유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행복한홈스쿨은 윤현숙(50) 시설장이 2000년 문을 연 무료공부방에서 시작됐다. 2004년부터 기아대책과 함께하고 있다. 윤 시설장이 이 사역을 시작한 것은 개척교회로 찾아온 세 명의 아이들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가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찾아왔어요. 밥만 먹여 달라고 하더군요. 그때가 오후 5시였는데 점심부터 굶었다고 했어요. 아이들의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가 혼자 돈을 벌어야 해서 매일 오후부터 늦은 밤까지 아이들끼리 집에 있다고 했어요.”

윤 시설장은 아이들을 그냥 둘 수 없어 매일 오후 학교를 마치면 교회로 데려와 밥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었다. 아이들은 처지가 비슷한 주위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했고, 규모가 커지면서 공부방 형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장소가 없어 낡은 상가를 빌렸다. 추운 겨울날 봉사자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 보수공사와 페인트칠을 했다. 그러나 공부방은 비가 오면 전기가 끊어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아 상가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교사들의 헌신 그리고 시청 관계자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몇 차례 이사 끝에 지금의 건물에 교회와 나란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윤 시설장은 국가에서 지원되는 금액으로는 운영하기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아이들 프로그램 진행비를 쓰다 보면 전기세 낼 돈도 없는 때가 많습니다. 교사들 월급은 턱없이 낮지만 개선해 줄 방법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그만두면 이 아이들을 어쩌겠습니까.”

행복한홈스쿨은 국가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지정돼 국가보조금을 받고 있다. 몇 년 전에 비하면 사정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운영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저소득가정 아동의 경우 야간에 방치되는 경우도 많아 행복한홈스쿨은 아동 야간보호프로그램 ‘별빛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며, 24시간 보육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아동 실종, 살해, 성폭력 등 강력범죄가 대부분 밤 시간대에 일어나고 있어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지만 운영 실태는 더 열악하다.

서울 영등포구 모텔이 즐비한 골목에 있는 ‘영이어린이집’은 국공립 어린이집이지만 저녁에는 ‘별빛학교’로 바뀐다. 밤늦게까지 있는 아이들은 10여명, 24시간 돌봄을 받는 아이들도 5명이나 있다.

“2003년 국가에서 24시간 어린이집을 공인하기 전 1999년부터 시작했어요. 단 한 명의 어린이 때문이었죠.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었어요. 아이가 어머니랑 단란주점에 있거나 혼자 집에 방치돼 있어야 했죠. 이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전 원장이 사실을 알고 마음이 아파서 아이를 데리고 있겠다고 했어요.”

조정미(41) 원장은 2006년부터 영이어린이집을 맡아 벌써 8년째 24시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한부모가정이 늘어나 갈수록 ‘별빛학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했다. “어떤 아버지는 일용직이라 새벽 5시에 일을 나가서 밤늦게 집에 돌아와요. 그럼 그 아이는 계속 혼자 있어야 하는 거예요. 컴퓨터 게임, 음란물 등에 쉽게 접하고 범죄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되기도 해요.”

조 원장은 국가가 보편적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선별적 복지를 놓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혼자서라도 자녀를 키워보려는 저소득층 부모들은 의지는 있지만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고, 사설기관은 돈이 없어 보내지 못한다.

“야간 보호프로그램이나 24시간 어린이집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도 선뜻 하겠다고 못해요.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24시간 어린이집의 경우 아이들을 적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년씩 함께 살아야 하는 데도 1인당 지원비는 22만원. 그중 절반은 부모가, 나머지는 국가가 부담한다. 인건비를 지급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돈을 아무리 아껴도 난방비, 전기요금, 식비 등 기본적인 비용이 있잖아요. 교사가 호봉이 높으면 인건비도 안 나오는 거예요. 지난해부터 라이나생명이 지원해주기 시작했어요. 숨통이 트였죠.”

조 원장은 국가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을 호소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아이들이 출발선은 같았으면 좋겠어요. 출발선이 같아도 이 아이들의 바닥은 무너져 있거든요. 걷다가 넘어지고, 때로는 서서 버티는 것도 힘들어요. 가난과 배신을 겪으신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을 격려해요. 그래도 여전히 현실은 막막하죠.”

기아대책 행복한홈스쿨=기아대책은 방과 후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에게 식사, 상담, 학습지도, 다양한 문화 체험 등을 제공함으로써 가정과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교회, 후원자와 연계해 지역아동센터 ‘행복한홈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 164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중 야간보호를 운영하는 센터는 80여개소이다.

노을·서주형 기아대책 홍보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