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청와대 비서의 덕목

입력 2013-05-13 17:39

청와대 비서실이 있는 건물은 위민관이다. 국민에 봉사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대통령이 국정을 올바로 펼 수 있도록 지근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들에게는 사생활이 거의 없다. 밤늦도록 일하고 새벽같이 출근한다. 기밀 유출과 청탁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사적 모임도 자제하는 게 미덕이다. 근로기준법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사각지대를 꼽으라면 선거철 정당과 청와대를 들 수 있다.

청와대 비서 가운데는 과로로 건강을 잃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첫 민정수석 임기 중 휴일도 없이 일하다 잇몸이 상해 10여개의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를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과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새누리당 박재완 전 의원도 청와대 근무 이후 이 2개를 국가에 헌납했다. 17대 의원 시절부터 의원회관에 야전침대를 놓았던 그는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경호처 부속청사에 침대를 두고 공직에 봉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로 불리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경우도 인구에 회자된다. 야당 대변인, 청와대 공보수석, 정책기획수석, 비서실장 등을 거친 그는 아무리 과음을 해도 새벽 보고를 빠뜨리지 않은 걸로 유명했다. 새벽까지 폭탄주를 마신 박 의원이 경기도 일산에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자택 부근에 승용차를 세우고 쪽잠을 잔 뒤 출근하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대북 송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때 “대통령의 성공이 국가의 성공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1991년 정계에 입문한 이래 김 대통령을 위해 13년간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최후진술서를 법정에서 낭독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도 국가에 헌신하는 비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북한 문제로 두 달 넘게 청와대 인근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새벽 1시쯤 퇴근했다가 새벽 5시 출근하는 강행군으로 체중이 3㎏ 넘게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윤창중 스캔들’로 드러난 청와대의 이면을 보면 위기대처능력은 물론 멸사봉공의 기강이나 동지애가 과거 같지 않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자로가 군주 모시는 법을 묻자 공자는 “속이지 말고 거슬리는 말도 하라(勿欺也 而犯之)”고 답한 것으로 논어는 전한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자신이 위기에 몰려도 솔직하고, 주군과 국민을 위해 직언을 잃지 않는 비서의 덕목은 지금도 유효하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