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특목고가 뭐길래

입력 2013-05-13 17:52


이모가 여섯살짜리 아들을 둔 조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모는 어떻게 해서 아이를 둘씩이나 특목고에 보내셨나요. 부러워요. 특목고에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감이 안 와요. 강남으로 이사라도 해야 할까 봐요.”

이모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뭔 그런 걱정을 벌써 하냐. 되는 대로 키우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가서 고민하면 되지.” 조카가 서울 명문대 출신 의사인데다 강남은 아니지만 중산층 거주지역에 살고 있기에 더 이상 해 줄 말을 찾기 어려웠다.

특목고 열풍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취학 아동 부모까지 관심을 가질 정도라면 광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목고에 보내지 못하면 ‘성공한 자녀’로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이 젊은 엄마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펴져 있지 않나 싶다. 학업성적 상위권 중3생 대부분이 특목고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고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부채질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로 대표되는 특목고가 좋은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일반고, 특히 일반 공립고에 비해 학교와 교사의 열정이 강한 데다 면학 분위기가 좋아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일반고에 만연한 집단따돌림이나 폭력사태가 거의 없다는 것,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 ‘좋은 환경의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특목고 선호 이유가 이뿐일까. 천만의 말씀. 명문대 진학이 용이할 것이란 생각이 가장 큰 이유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명문대 진학률은 일반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과학고 학생 대부분은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에 어렵지 않게 진학한다. 수도권의 이름 있는 외고에선 전교생 절반 이상이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합격한다. 학력 지상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특목고 타령을 할 만도 하다.

특목고가 성적 우수학생을 뽑아 명문대에 대거 합격시키는 걸 함부로 탓할 수는 없다. 고교 평준화의 문제점을 해소하면서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특목고가 득세하면서 초·중학생의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대다수 고교생이 다니는 일반고가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몰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육이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대입제도 근본적 개선이 해법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뭔가 달라질 것이란 기대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취임 후 제시한 교육정책 중 눈에 띄는 건 선행학습 금지뿐이다. 입시 및 학내 시험 문제를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낼 테니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행학습은 특목고 진학을 위한 필수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는데다 사교육의 주범이기 때문에 막을 수만 있다면 정책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장관이 밀어붙인다고 해서 선행학습이 사라질 것으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설령 법으로 금지해도 음성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선행학습을 통해 특목고를 가는 게 명문대 진학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입시 제도를 대폭 손질하는 수밖에 없다. 수시모집 전형이 대세인 현 대입제도로는 선행학습과 특목고 광풍을 막기 어렵다. 주로 입학사정관제를 적용하는 수시모집의 경우 대입 스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특목고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치원생 때부터 특목고 진학을 준비해야 하는 대한민국 교육은 중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 대입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근치(根治) 요법이 불가피해 보인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