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사태 너무 빨리 잊혀져 안타깝다”…이승환 일성레포츠 이사
입력 2013-05-12 18:58 수정 2013-05-12 23:20
“소나무는 내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돌아오라.”
개성공단 조업 중단 40일째를 맞은 12일. 의류 제조업체 일성레포츠 이승환(사진) 이사의 귓가엔 북한 경비원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지난달 3일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한 뒤에도 개성공단을 지켰다가 지난달 27일 오후 집으로 돌아왔다. 1차로 귀환한 다른 124명과 함께였다. 이 이사가 자신의 일터인 개성공단을 떠나온 지 보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개성공단 사태 후 이 이사는 그곳에서 보냈던 25일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소나무와 텃밭, 하얀 철조망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풀어냈다.
그는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없는데 그새 큰 뉴스들에 파묻혀 개성공단이 잊혀지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소나무=지난 4월 3일. 매일 아침이면 들어오던 화물트럭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 이사는 그제야 북한 당국이 남측의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여러 차례 경험했던 터라 조만간 정상화될 것이라 믿었다.
분위기가 심각해진 건 8일 북한 당국이 북한 근로자를 철수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이 회사에 근무하는 700명의 북측 근로자들은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공장은 멈췄고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프면 큰일이란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주변 기업 직원들과 시간을 정해 조깅을 했다. 조깅을 하던 이 이사의 눈에 띈 게 소나무였다.
그는 “공단 주변에 소나무들이 많아 10그루 정도를 공장 근처에 옮겨 심었다”면서 “그런 우리를 보고 북한 사람들이 놀라더라”고 회고했다. 북측 근로자 철수 후 개성공단에 남은 북한 사람은 경비원과 지도청국 참사, 세관, 그리고 북측 군인들뿐이었다. 자신들은 심각한데 정작 남측 사람들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는 것이다.
이 이사가 개성공단을 떠나던 날 회사 로고가 박힌 작업복을 입은 북한 경비원은 “소나무 잘 돌보고 있겠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란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가슴에 묻어 두기로 했다.
◇텃밭=개성공단 주재원들을 끈끈하게 맺어준 건 밥이었다. 이 이사와 인근 기업 주재원들은 늘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식사 준비는 돌아가면서 했다.
이 이사는 “우리 공장 바로 옆에 풍양이란 기업이 있었는데 그 회사 숙소 앞에 묻어놓은 김장독에서 꺼낸 김치 맛이 기가 막혔다”며 웃음을 지었다. 고기와 쌀은 북측 근로자들이 두고 나가 부족하지 않았다. 상추며 시금치는 텃밭에서 수급했다.
이 이사는 “식자재가 부족하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부족함은 없었다”면서 “그렇게라도 말하면 남북 어디건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개성으로 돌아가는 날 씨앗과 모종을 가지고 올라갈 계획이다.
◇하얀 철조망=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남북을 갈라놓은 철조망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 이사는 “개성공단엔 두 겹의 철조망이 둘러쳐 있는데 남쪽 사람은 하얀 철조망, 북쪽 사람은 초록색 철조망을 건널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철조망 사이엔 북한 군인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개성공단은 위험하지 않았다는 게 주재원들의 얘기다.
이 이사는 “정부의 철수 명령 때문에 할 수 없이 귀환했는데 돌아오니 더 갑갑하다”면서 “본사로 출근은 하고 있지만 할 일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거래처인 코오롱과 휠라 등 대기업들이 기다려 주기로 했지만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이 이사는 “정부가 엄청난 지원을 해 줄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실질적 도움은 없다”면서 “이제부터라도 개성공단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