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 박진선 대표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건강한 식품 나오고, 먹는 사람도 행복”
입력 2013-05-12 18:49 수정 2013-05-12 18:53
“갤러리야? 연구소야?” 충북 청원 오송생명과학단지에 국내 최초의 발효전문 연구소인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이 최근 들어섰다. 2만3186㎡(약 7000평)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된 이 연구소의 회의실과 복도 등은 온통 미술작품으로 꾸며졌다. 장윤규 한석현 이달우 김보민 등 14명의 작가들이 재기발랄한 작품으로 딱딱한 연구소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연구소를 갤러리로 조성하는 데는 박진선(63·사진) 대표의 아이디어와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샘표 창업주인 고(故) 박규회 선대회장의 장손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를 거쳐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 대표는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건강한 식품이 나오고, 먹는 사람들도 행복해진다”고 강조하는 간장쟁이다.
박 대표는 10일 우리발효연구중심에서 열린 ‘샘표 갤러리 프로젝트’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직원 및 기자들과 함께 KTX를 탔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라는 로고송대로 현장을 직접 찾아 사람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소탈한 성격인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에 환한 웃음을 짓는 모습이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이곳 ‘샘표 갤러리’는 6개의 회의실을 수영장이나 배추밭 이미지로 디자인한 ‘룸 갤러리’, 실험실과 사무실 사이 55m의 복도에 벽화를 제작한 ‘길 갤러리’, 서울 창동 옛 공장의 굴뚝을 옮겨와 조형물로 재탄생시킨 ‘외부 갤러리’ 등으로 구성됐다. 쾌적한 환경과 더불어 상상력 넘치는 미술작품을 수시로 접하면서 근무하는 이곳 직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다.
샘표의 ‘아트 프로젝트’는 10년째다. 경기도 이천의 간장공장에 ‘샘표 스페이스’를 2004년 개관했다. 구내식당 옆에 들어선 이 미술관은 직원들이 식사 전후에 반드시 들르게 되는 필수 코스다. 2010년에는 회색 공장 외벽을 대형 예술작품으로 꾸민 ‘아트 팩토리’를 조성했다. ‘미술’의 ‘미’자도 모르던 직원들이 이젠 작가에게 조언을 할 정도로 미적 감각이 높아졌다고 한다.
“아트 프로젝트에 직원들의 반대나 거부 반응은 없느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문화활동이 생산성에 효과를 미치는지 측정할 수는 없지만 처음엔 ‘이런 걸 왜 하나’하고 의아해하던 사람들이 점차 작품을 좋아하고 빠져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방문하거나 젊은세대들이 공장에 사진 찍으러 오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가는 듯해 보람을 느낀다고.
1946년 창립한 샘표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발효식품 기업이다. 박 대표는 1990년 기획실장으로 입사해 1997년 대표로 취임했다. “좋아하는 작품을 사기도 하는 미술 애호가냐”고 물으니 “미술 애호가가 무슨 뜻이에요? 저는 미술 서포터는 아니고 직원들과 회사를 위해, 또한 고객들을 위해 미술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오송=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