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추문도 모자라 내부 진실공방까지 벌이나

입력 2013-05-12 18:35

철저한 조사와 추상같은 문책으로 원칙 대응하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워싱턴DC 성추행 의혹을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주말 기자회견을 자청해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수사 기피 의혹을 사고 있는 갑작스런 귀국에 대해서도 청와대 이남기 홍보수석의 종용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 수석은 이를 반박했다. 진실이 무엇이냐를 떠나 청와대 안에서 동일한 사안을 두고 엇갈린 진술이 나오는 것은 또 다른 국제망신이다. 명확히 진상을 규명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한다.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은 모순적이다. 그는 여성 인턴의 허리를 툭 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어떤 성적인 의도도 갖고 있지 않은 ‘위로와 격려의 제스처’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이 동의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피해 여성에게 심심한 반성과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지만, 해당 여성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심한 질책을 했다는 내용 등을 공개했다. 피해 여성의 심리적 고통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의 결백 주장에 급급했다.

또 다른 논란은 윤 전 대변인의 조기 귀국 문제다. 사건이 불거진 후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을 일단 업무에서 배제시킨 뒤 현지에 잔류시키는 게 옳았다. 필요한 조사 절차를 마무리짓고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과 연락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윤 전 대변인으로서 당당했고, 방미단으로서도 현지 사법체계를 존중하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이 신고를 받고 조사를 시작한 사실을 알면서 가해 혐의자가 서둘러 귀국함으로써 수사를 기피한 셈이 됐다.

나아가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은 조기 귀국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 수석이 이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직후 이를 부인했다. 대통령의 얼굴을 자처하던 청와대 대변인과 청와대 홍보 라인이 책임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낯 뜨겁다.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선공후사의 태도로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청와대가 제대로 된 조직인지 의심을 품게 만든다. 성추행 문제를 떠나 청와대 내부의 대응에서 잇따라 허점을 드러내 또 다른 추문을 빚고 있다.

방미 사절단에서 생긴 극히 이례적인 이번 사건은 이미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이라도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 윤 전 대변인은 워싱턴 경찰의 조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황급히 귀국해 기자회견을 열고 성추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청와대가 사건을 인지하고 보고받은 과정, 대처 방식의 적절성과 의사결정 과정 등에 대해서도 별도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 수석이 이미 사의를 표명한 상태라지만 문제가 드러나면 당사자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청와대 조직과 기강에 대한 재점검도 필요하다. 철저한 조사와 추상같은 인책은 더 이상의 국가 위신 추락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