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놀이 한마당에 日관객 큰 호응… 한일 공동 제작 연극 ‘아시아 온천’

입력 2013-05-12 18:28 수정 2013-05-12 09:17


무대는 관객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한쪽에는 분장실처럼 갖가지 의상이 옷걸이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배우들은 자기 대사가 끝나면 무대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면서 다음 의상을 갈아입었다. 한쪽에는 피아노 기타 드럼 등 악기가 놓여져 있다. 배우는 조명 아래에서 대사를 읊조리다가 연기를 마치면 구석으로 가서 악기를 연주했다. 이 모든 것이 관객에게 일부러 노출하기 위한 장치다.

연극 중간에는 행상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객석 계단으로 내려오며 의도적으로 극의 흐름을 끊었다. 이들은 퀴즈를 내고 경품을 나눠주며 관객의 참여를 유도했다. 한국 공연장에서는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가부키(歌舞伎)와 노(能) 등 정형화된 전통공연에 익숙해 있는 일본 관객에게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한국 마당놀이와 일본 만담을 섞어 놓은 듯한 흥겨운 분위기에 객석은 술렁거렸다.

10일 밤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도쿄신국립극장 중극장. 837석 규모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일 공동제작 연극 ‘아시아 온천’의 첫 공연 현장이다. 이 작품은 양국의 대표 극장인 예술의전당과 도쿄신국립극장의 ‘강 건너 저편, 5월에’(2002), ‘야끼니꾸 드래곤’(2008)에 이은 세 번째 공동제작 연극.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56)이 대본을 쓰고 국립극단 손진책(66)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아시아 온천’의 배경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아시아 섬나라 ‘어제도’. 조용하던 섬에 온천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방인 형제가 섬으로 들어온다. 조상이 묻힌 땅을 절대 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지(김진태), 리조트 사업을 위해 어떻게든 땅을 사려는 카케루(가쓰무라 마사노부). 이들의 갈등은 깊어져 간다. 이 와중에 대지의 딸 종달이(이봉련)와 카케루의 동생 아유무(조성하)는 사랑에 빠져 비밀리에 만남을 이어간다. 원수 집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특유의 섬세함으로 슬픔과 웃음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정 작가의 솜씨는 여전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내용이나 대사가 다소 진부한 느낌이다. 마당극의 대부인 손 감독은 대본에 신명과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무대는 집단 가면무도회가 펼쳐지는 연희의 장으로, 때로는 북소리 장구소리 들썩이는 축제의 공간으로, 어떤 때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는 낭만적인 세계로 탈바꿈했다.

양국의 배우들은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로 대사를 한다. 일본에서는 한국어 자막이, 한국 공연에선 일본어 자막이 나온다. 김진태 정태화 서상원 등 관록 있는 연기파 배우와 일본의 인기배우 가쓰무라 마사노부, 재일교포 조성하, 지바 데쓰야 등 22명이 출연한다.

두 달이 넘는 준비기간 동안 작가와 배우들은 치열한 토론과 연습과정을 거쳤다. 한·일 간 인식차이도 있었다. 특히 종달이의 운명을 놓고 논쟁이 많았다. 일본 정서로는 종달이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한국 정서로는 살아야 했다. 결국 대지와의 몸싸움 중에 아유무가 죽고, 종달이도 제 몸에 칼을 꽂으면서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손 감독은 “한국과 일본 배우들의 서로 다름이 오히려 작품 속에서 더욱 강한 에너지로 나타날 수 있도록 ‘열린 연극’을 만드는 데 치중했다”며 “이 연극은 관객의 국적이나 개인적 경험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옛날이야기도,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도 아닌, 가깝고도 친밀한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3시간(인터미션 포함)에 이르는 공연에 대해 일본 관객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대학생 히로시 나가사와(23)씨는 “두 나라의 배우들이 한데 어우러져 음악과 춤을 통해 양국의 문화를 보여준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일본 공연은 26일까지이며 한국에서는 6월 11∼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도쿄=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