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김유정의 금광쟁이 ‘뒷잽이’ 시절
입력 2013-05-12 18:28
한국문단에 큰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이 등단 이전 금광을 전전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금광을 전전했으며 금광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김영기의 ‘김유정, 그 문학과 생애’(지문사·1992)에 따르면 김유정은 1930년 여름, 연희전문을 자퇴하고 고향인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로 낙향해 마을 근처 물골에 놀러가곤 했다. 물골 개천 바닥에서 사금을 캐느라 떠들썩한 금장이들을 보고 단편 ‘금 따는 콩밭’을 썼다는 것이다.
이후 경성에서 함께 살던 둘째누님은 광업소 기사인 정씨와 동거 중이었다. 1931년 김유정은 이번엔 보성전문 법학부에 입학만 하고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정씨가 처남(?)을 집에서 내쫓을 방편으로 충남 예산 금광의 현장감독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유정의 금광 체험은 1931년 몇 달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하지만 ‘김유정의 귀환’(소명출판사·2012) 공동 저자인 전봉관 카이스트 교수는 ‘김유정의 금광체험과 금광 소설’이란 글에서 김유정의 금광 체험을 1935년까지 연장해 놓았다. 전 교수는 잡지 ‘조광’ 1937년 5월호에 실린 김유정 친구인 김문집의 회고를 인용해 “‘소낙비’가 (1935년 1월 신춘문예) 1등으로 당선했을 적의 군(君)의 직업은 실로 금광쟁이 뒷잽이였다. 광(鑛)쟁이 따라다니면서 밥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고 등기소 심부름도 하고…”라고 밝혀놓았다.
전 교수는 이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김유정을 농촌계몽운동가로 소개하는 것보다 금전판(금광의 일터)에서도 밑바닥 인생인 ‘금광쟁이 뒷잽이’였다고 소개하는 게 그의 문학적 특성에 비춰 더 유용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김유정은 황금을 만진 작가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