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여기 빈 책상 있어요!

입력 2013-05-12 18:36


사진 속 저 책상은 독일 함부르크의 ‘고바질(Gobasil)’이란 작은 회사에 있다. 기업에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공하는 업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2010년 설립됐다. 지금 저 책상은 비어 있다. 6월 20일 새 직원이 들어올 때까지 쓸 사람이 없다. 회사는 책상을 놀리느니 누군가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대상은 창의적 마인드를 가진 프리랜서, 임대료는 공짜다.

이 회사는 ‘Free Desk Here’란 웹사이트(openstudioclub.com)에 ‘책상 임대’ 광고를 올렸다. ‘여기 빈 책상 있어요’ 정도로 번역될 이 사이트는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함으로 런던에서 활동 중인 닉 카우치가 고안했다. 코카콜라, 에릭슨 같은 기업에 디자인 컨설팅을 하던 사람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창조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책상 임대 절차는 아주 간단하다. 사무실에 빈 책상이 있다면 저렇게 사진을 찍어 사이트에 올리면 된다. 임차인이 나타나면 짧은 인터뷰를 거쳐 임대가 이뤄진다. 임차인은 매일 그 사무실로 출근하지만 회사 일을 돕는 게 아니라 그 책상에서 그냥 자기 일을 한다.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직장에 다니다 뛰쳐나온 창업자들, 광고 영화 디자인 마케팅 IT 분야의 전문 프리랜서들이 주로 찾는다.

사이트가 개설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뉴욕 런던 코펜하겐 마드리드 두바이 싱가포르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책상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마다 회사가 원하는 임차인의 조건이 달려 있는데, 그 조건이란 게 ‘창의적 생각을 가진 사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려는 사람’이면 아무나 좋다는 식이다.

이렇게 책상을 내주면서 회사들이 기대하는 건 ‘낯선 대화’라고 한다. 같은 사무실에 있다 보면 낯선 이와도 자연스레 말을 섞게 될 테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 뜻밖의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카우치는 “창조란 낯선 이들과 뜻밖의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구글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본사 ‘구글플렉스’를 리모델링하고 있다. 최근 조감도를 공개하며 “3만평 부지에 새로 들어설 구글플렉스는 어떤 직원도 다른 직원과 마주치는 데 2분30초 이상 걸을 필요가 없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업무 영역이 다른 직원들의 ‘우연한 만남’과 ‘낯선 대화’를 극대화해 창의적 발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구글이 엄청난 돈을 들여 추구하는 것을 카우치는 사무실 공간의 ‘공유’를 통해 공짜로 구축해 가고 있다. 그의 목표대로 책상 임대→낯선 대화→아이디어→창의적 인맥의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아이디어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면 구글을 넘어설 기업이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카우치는 생판 모르는 이들과 나누는 ‘공유’의 삶에 ‘창조’의 DNA가 들어 있음을 엿보았다. 지금 서울이야말로 ‘빈 책상 프로젝트’가 필요한 도시일 듯하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유경제를 말하고 있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