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염운옥] 네오 나치의 평범한 얼굴

입력 2013-05-12 19:22


지난 6일부터 독일 뮌헨에서 의미심장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네오 나치 베아테 췌페에 대한 재판으로, 36년 전 서독의 극좌파 무장단체 적군파 재판 이후 최대의 테러리스트 재판이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나치 전범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과 이 재판을 동일한 반열에 놓았다. 췌페 재판은 독일 사회에 극우 인종주의와 네오 나치가 부활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기를 요구한다. 나치 과거 청산을 위해 노력해 온 독일은 이제 ‘스와스티카(나치 십자가)’는 없다고 자부했고, 일부 극우주의자가 존재하더라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으니 문제없다고 믿었다. 췌페 재판은 독일 사회의 이런 믿음이 ‘신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베아테 췌페는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터키 이민자 8명, 그리스 이민자 1명, 독일 경찰관 1명을 살해하고 쾰른의 이민자 거주 지역에서 2건의 폭탄 테러를 저질렀으며, 15건의 무장강도와 방화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녀는 공범 우베 문들로스, 우베 뷘하르트와 함께 히틀러의 나치당을 모방해 ‘민족민주사회주의자 지하당’을 결성하고 이민자들을 골라 살해한 네오 나치 테러리스트였다. 2000년 9월 이들에게 희생된 터키계 노점상은 얼굴과 등에 6발의 총탄을 맞고 처참하게 죽었다.

재판 첫 날, 희생자 가족과 대중 앞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췌페의 모습은 의외였다. 흰 블라우스, 검은색 정장 차림에 커다란 링 귀고리를 한 그녀는 커리어 우먼의 자태 그 자체였다. 눈빛은 다소 불안해 보이나 입을 앙다물고 양팔을 부여잡은 자세에서는 결연한 의지마저 느껴진다. 함께 기소된 남성 공범들이 하나같이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리는 자세를 취한 것에 비하면 그녀의 당당함은 더욱 돋보인다. 테러리스트의 얼굴을 숨기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여성을 연출한 베아테. 그녀가 10여년간 은신처에서 들키지 않았던 이유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친절한 이웃집 언니’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뮌헨의 췌페’는 52년 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한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 법정에 섰다. 학살자의 얼굴에서 악마의 형상을 기대했던 방청객들은 너무나 평범하고 소심한 아이히만의 모습에 놀랐다. 그날 방청객 중에는 유대계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있었다. 아렌트는 이 재판의 방청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악인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악의 평범성 개념의 핵심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무사유(無思惟)의 죄, 즉 사유하지 않는 죄를 저질렀다고 말한다. 사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고유한 능력이자 의무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생겨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행위로부터 악으로 가는 첫 걸음이 시작된다. 네오 나치 췌페가 저지른 죄 역시 아이히만과 같은 것이다.

사실 극우파의 등장, 인종 범죄, 이민자 대상 공격은 비단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 사회에 여전히 뿌리 깊은 인종주의에 반(反)이민 포퓰리즘이 더해지면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7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발생한 브레이빅 테러의 경우는 공격 대상이 집권 노동당이었지만 그해 겨울 이탈리아 피렌체, 벨기에 리에주에서 연이어 발생한 총격 사건의 희생자는 노점상 이민자들이었다. 올 4월에는 그리스 딸기 농장에서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방글라데시와 베네수엘라 이주노동자들에게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도 있었다.

앞으로 2년 이상 진행될 췌페 재판은 독일 사회를 들끓게 할 것이다. 한 네오 나치 여성에 대한 재판이 평범한 사람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인종주의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염운옥 고려대역사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