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선배가 남긴 소중한 유산
입력 2013-05-12 18:36
40대 초반 5년간 암투병을 한 선배가 있었다. 이후 그는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쳤다. 건강을 회복한 뒤 몸을 단련하기 위해 전문산악인을 양성하는 등반학교에 들어가 30대 남성들과 함께 암벽 등반에 도전했다. 나를 친구처럼 대해 주던 그 선배는 초보 등반자로서 그때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스릴 있는 경험담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살면서 처음 하는 일들은 모두 도전이에요. 도전 앞에서 누구나 두려움에 떨지만 용기를 갖고 한 발 내디딜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면 불안을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해요.” 밑그림이 그려지기 전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내게 이 말은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왔다.
선배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사하라 마라톤(250㎞)을 완주했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반에 성공했다. 그 뒤 2008년 봄, 히말라야의 아마다블람(6856m) 원정대에 들어가 6개월간 산에 오를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다블람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만져 보며 날마다 산에 가는 꿈을 키운다고 했다. 그런데 3개월쯤 됐을 때 팀을 해체할 수밖에 없는 내부 사정이 생겨 갈망하던 꿈을 접게 됐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까. 지난번과는 달리 밝은 얼굴로 나타났다. 비록 꿈은 깨졌지만 그 일을 실패로 여기지 않기로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아마다블람 원정을 준비하며 설레고 기뻤던 그 순간들도 소중했기에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칫 제로로 돌릴 뻔한 그 순간을 의미 있게 살려낸 말이 참 인상 깊게 다가왔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좋은 멘토였던 선배가 그리워진다. 지난해 이맘때 하늘나라로 떠난 곽정란(전 어린이도서연구회 사무총장)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 순간 불꽃처럼 살았던 선배는 나에게 모험과 도전,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살아가면서 새로운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그 선배가 생각난다.
등산용어 중 등정(登頂)·등로(登路)주의가 있다. 등정주의는 정상 등정이 최대 목표이나, 등로주의는 등정에 이르는 과정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나는 그때부터 선배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등로주의를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일을 열심히 노력했으나 기대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도 잃어버린 것보다 그 시간을 통해 얻은 것에 눈을 돌리는 건강한 긍정성은 선배가 내게 물려준 소중한 유산이다.
윤필교 (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