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힐링(Healing)의 시대

입력 2013-05-12 17:01


현대는 소위 ‘힐링(Healing)’의 시대다. 너나 할 것 없이 힐링에 관심이 많다. 그만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거리에 대해 항상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 역시 힐링이라는 주제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이다. 가히 ‘힐링 열풍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교회 안에서도 그동안 위로와 공감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자기 마음의 상처를 노출시키고 치유 받으려는 분위기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다.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자칫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그것은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수동적인 자세, 지나친 힐링 의존적 자세가 그것이다. 작은 상처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누군가가 나를 치료하라’는 식으로 드러누워 버린다면 이것 또한 적잖은 문제다. 약을 너무 좋아하면 몸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작은 마음의 상처도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말씀, ‘감기는 뛰고 달리면 낫는 거야!’ 그렇다. 어쩌면 뛰고 달려야 할 시간에 오히려 웅크리고 앉아서 ‘상처 타령’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느 치유 상담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동안 심리학의 기본 전제는 ‘인간은 병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치유를 위하여 주로 어린 시절의 상처, 상실, 학대 등을 연구했는데, 인간은 온실의 화초와 같아서 절대로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와서는 사람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고통을 견디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역설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조심할 것이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자기 정화 능력’이라는 자원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정신적 자기치유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힐링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결코 나약해서는 안 된다. 고통에 대해 오히려 적극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은 부동산 부지를 보러 갈 때에는 항상 겨울에 간다고 한다. 봄이나 여름에는 아름다운 꽃과 무성한 나무가 많아서 부동산의 실제 가치보다 좋아 보이는 경향이 있단다. 그래서 앙상한 겨울에 봐야 부동산의 가치가 제대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난의 겨울에 우리 인생의 본질과 목적이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무슨 말인가? 고통의 시간은 기회라는 뜻이다. 고통의 시간이 아니면 결코 볼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정호승은 ‘내 등에 짐’이라는 시에서 말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를 알았습니다 /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위로는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은 적극적인 도전이어야 한다. 힐링이 전부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상처받았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오는 식상한 말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