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도미니카 김성자 선교사] (5) 아이티에서 2년간 지진구호 사역
입력 2013-05-12 16:59 수정 2013-05-12 17:03
지진 고통 땅에 사랑의 빵공장… 복음도 함께 배달합니다
2010년 1월 12일 오후 5시(현지시간) 아이티공화국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 막대한 피해를 가져와 전 세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이티는 서인도제도 이스파니올라섬의 서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랜 내전과 잦은 쿠데타를 겪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며 서민들의 삶과 인권이 파괴된 후진국이지요.
당시 강력한 지진으로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을 포함한 수도의 주요 건물들이 무너졌고 공항, 병원, 교도소 등 여러 시설도 파괴돼 폐쇄됐습니다. 사망자는 22만명이 넘었고 부상자는 3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200여년 만에 일어난 최악의 강진으로 전쟁보다 참혹한 피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던 순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현지인 목회자 연장교육 세미나를 열고 있던 우리는 잠깐 동안 건물의 흔들림을 느꼈습니다. 이후 도미니카공화국 한인선교사회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티 이웃을 돕는 일에 관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지진 발생 후 14일째, 아직도 많은 아이티 사람들은 무너진 건물 밑에서 신음하며 구조대원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전기와 물, 가스 등의 공급이 중단되고 교통수단도 끊긴 상황에서 이재민들은 고통 속에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과 가족을 잃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주민들, 배고픔으로 폭도가 된 사람들을 생각하며 구호에 나서게 됐습니다. 모두가 교파를 초월해 아이티 형제자매들의 생명 살리기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지요.
아이티 지진구호 사역은 2012년 3월까지 이뤄졌습니다. 지진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복음과 빵을 전하는 사역이었지요. 시체 썩는 냄새를 맡으면서 온갖 위험을 견뎌야 했습니다. 또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을 오가면서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복잡한 수속 때문에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이티 난민 중에는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피신해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사실 아이티 천막 난민촌의 사람들은 그나마 여러 혜택을 받았지만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온 사람들은 의료나 숙식 등에서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지요. 우리 부부는 한국의 목사님들이 보내주신 헌금으로 구호품을 만들어 난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평신도국에서 모금한 아이티 지진구호 헌금으로 감리회 아이티 지진구호팀이 한국에서 왔습니다. 많은 약품과 수술도구를 가져온 감리회 구호팀은 천막 난민촌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약을 처방해줬습니다.
빵 기계 세트와 빵 공장 자재, 담요, 옷 등이 들어있는 대형 컨테이너가 한 달반 만에 아이티에 도착했습니다.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정성을 모아 보내주신 것이었지요. 그러나 현지 통관 규정상 컨테이너를 면세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1주일 동안 담당 기관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습니다. 그러다 재무부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 주님의 도움으로 마침내 국장의 승인 서명을 받아냈습니다. 우리는 너무 기뻐 서로 얼싸안았지요.
빵 공장 건축팀은 말도 안 통하는 아이티 형제들과 손짓 발짓을 해가며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한 달 넘게 밤낮으로 땀 흘리며 일한 끝에 100㎡(30평)짜리 조립식 건물인 빵 공장이 완성됐습니다. 2010년 6월 아이티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와 NGO 관계자들을 초청해 사랑의 빵 공장 준공식을 열었지요. 빵과 복음으로 아이티 주민들의 삶이 변화되기를 소망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피부가 약해서 선교지로 떠나기 전부터 친구들이 걱정했었지만 카리브해의 뜨거운 날씨 속에서도 한번도 땀띠로 고생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빵 공장 세우는 일을 하면서 온몸에 땀띠가 나더니 피부병으로 번져 오랜 시간 힘들었습니다. 아이티는 밤에도 너무 더워 선교팀원 대부분이 발코니나 마당에서 자는데, 선풍기도 없는 곳에서 밤새 땀을 흘리다보니 땀띠가 난 것이었지요. 바람이 부는 날에는 조금 수그러들다가 날이 더워지면 다시 온몸이 가려웠습니다. 의사가 준 약을 먹고 연고를 발라도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눈과 머릿속까지 가렵고 따가운 것을 참으면서 살았지요. 365일 더위와 씨름하다보면 고국의 선선한 바람이 미치도록 그리워집니다.
세계 식량의 날(10월 16일)에는 아이티에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들이 사랑의 빵 공장에 모여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즉석 붕어빵 등 식량을 같이 만들어 천막 난민촌 3곳의 식구들에게 나눠줬지요. 그날 비가 아주 많이 내려 빵을 가지러 오시는 분들이 불편을 겪었지만 협력사역은 잘 마쳤습니다.
천막 난민촌으로 들어가는 길에 부두교 신당의 화려하게 색칠된 담벼락에 뱀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빈민촌 사람들이 진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도미니카인들이 훨씬 행복해보였습니다.
사랑의 빵 공장에서는 빵을 열심히 만들어 현지 선교사들이 추천하는 학교와 고아원, 교회, 난민촌에 지속적으로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제빵 교육도 실시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오신 김 집사님 부부가 고생을 하셨지요. 김 집사님은 공장의 기계 위치 등 손길이 닿는 구석구석을 정말 일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바꿔놓으셨습니다. 아이티인들은 워낙 느린데다 시키는 일 외에는 전혀 하지 않는 품성을 갖고 있지만, 제빵 교육을 받는 순간에는 집사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노트에 적으면서 열심히 배우더군요. 처음에는 집사님이 가신 뒤 아이티 일꾼들이 빵을 얼마나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달 동안의 교육을 진행하면서 애초의 걱정은 꼭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집사님이 평생을 통해 익힌 귀한 제빵 기술을 가르쳐주셔서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42년의 노하우를 우리가 다 배울 수는 없었지만 많은 도움이 됐지요.
아이티를 오갈 때 공짜인 유엔 비행기를 여러 번 이용했습니다. 버스로 국경을 넘어가는 것보다 편했지만, 비행기가 너무 작아서 탑승하면 불안한 마음에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요. 어느 날엔 독일 여의사와 단둘이 유엔 비행기를 타고 간 적이 있습니다. 허리케인이 온다는 기상예보를 들은 다른 탑승객들이 표를 취소한 탓에 우리 둘만 탔던 것입니다. 강한 비바람에 가뜩이나 작은 비행기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흔들리는 기내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다행히 주님께서 지켜주셔서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지요.
아이티를 방문할 때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길거리에서 파는 까맣게 구운 옥수수로 점심을 때운 뒤 종일 먼지를 마시면서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2년 동안 기도하며 찾던 선교센터 장소를 주님의 도우심으로 구입하게 됐습니다. 2012년 3월까지 기본적인 공사를 마치고 빵 공장과 선교센터를 이전했지요. 2012년 5월부터는 다른 선교사가 파송돼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사랑의 빵 공장을 통해 수많은 아이티인들의 배고픔이 해소되고, 주님의 복음이 더욱 왕성하게 전파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2년 동안의 아이티 구호사역은 주님께서 이루신 것이며 모든 성도들의 아낌없는 후원과 기도로 가능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생명을 살리는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아이티의 영혼들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아이티인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이티가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김성자 무차아구아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