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일미술관 정전협정 60주년 기념 ‘금지된 정원’ 기획전

입력 2013-05-12 17:30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북한강변 391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호젓한 분위기의 미술관이 하나 나온다. 매일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을 지닌 ‘가일(嘉日)미술관’이다.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강건국(68) 관장이 2003년 5월 건립한 사립미술관으로 국내외 작가의 작품 5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옆쪽으로 강물이 흐르는 미술관은 언제나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분히 엄숙하면서도 의미심장한 기획전을 열고 있다. 6월 16일까지 계속되는 ‘금지된 정원(forbidden garden)’. 6·25전쟁 정전(停戰)협정 체결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휴전 이후 60년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의 보고이자 철새들의 낙원으로 인식되는 비무장지대(DMZ)를 소재로 한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에는 강용석 고정남 김용태 김태은 류연복 손기환 송창 이반 황세준 등 세대를 아우르는 작가 9명이 참여했다. 사진작가 강용석은 경기도 연천에 있는 태국참전비를 촬영해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한국전쟁기념비’를 전시한다.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점점 잊혀져 가거나 정치적으로 도구화되는 현실을 전쟁기념비 조형물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사진작가 고정남은 휴전선의 전차 장애물과 진달래를 비교해 보여주면서 분단 조국의 현장을 드러내고 있다. 역시 사진작가 김용태는 경기도 동두천의 기지촌 여성과 주한미군의 기념사진을 콜라주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부끄러운 현실을 적시한다. 영상작가 김태은은 한반도에서만 존재하는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떠올리게 한다.

목판화가 류연복은 ‘DMZ’라는 작품을 통해 평화로운 들녘을 무겁게 짓밟고 있는 정체에 대해 얘기한다. 회화작가 손기환의 ‘DMZ-마주보기’는 남과 북 또는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무언가 보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노래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이런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붉은 철책 위에 외롭게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를 그린 회화작가 송창의 ‘검은 눈물’은 DMZ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DMZ 문제를 예술로 끌어들인 회화작가 이반의 ‘DMZ 노트’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로잉으로 풀어냈다. 화면을 상하좌우로 분할해 분단의 풍경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회화작가 황세준의 ‘전쟁영화’는 군사적 대치상태의 긴장감을 드러낸다.

전시는 동시대 미술가들이 DMZ에 대한 시각과 견해를 담은 작품을 통해 단절의 공간을 소통의 통로로 바꿔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홍성미 가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DMZ가 화해와 협력의 공간이 되고, 나아가 통일의 지름길을 여는 작은 씨앗이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 전시 이후 6월 23∼29일 독일 베를린, 7월 2∼12일 에스토니아에서 전시가 이어진다(031-584-4722).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