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시장 안됐다면… 집값 거품 빼는 협동조합했을 것”

입력 2013-05-12 17:26


‘사회적 경제’ 사업에 역점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은 20대에 사법시험을 통해 검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시민운동에 헌신했다. 1991년 영국 유학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 툭 하면 가방 하나 메고 해외에 나가 몇 달씩 그 나라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익히며 보냈다. 2001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한 뒤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의 시초인 ‘아름다운 가게’를 만들었다. 서울시장이 된 뒤 가장 공 들여 추진한 것도 사회적 경제 사업이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대도시 서울을 상생의 도시로 바꾸려는 그에게 ‘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연중기획 사회적 경제 분야를 시작하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만난 사람=오종석 경제부장

-서울시에 ‘사회적경제과’가 있는데.

“우리가 훨씬 더 자주 시민과 직접 마주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나 경험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문제로 드러난 것은 ‘진짜’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과를 신설했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 사회적 경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 비전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91년 영국 유학 당시 시내 중심지에 재활용·자선단체들이 다 가게를 내놓고 있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격이 싸고 의미도 있었다. 90년대에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다 물러난 뒤 아름다운 가게를 연 게 그때의 경험 때문이다. 착한 기업, 착한 실험을 하는 곳은 무조건 도와주는 곳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부자가 거액을 빌려 한번 망하면 은행이 휘청거리지만 가난한 사람은 절대 돈을 떼먹지 않는다. 희망제작소에서 이런 사업을 여러 개 하다 협동조합도 제대로 해보려던 차에 시장 선거에 나섰다.”

-만약 협동조합을 했다면 어떤 분야를 가장 하고 싶었나.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별게 아니다. 그냥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생활협동조합은 굉장히 성장했다. 생협은 도시와 농촌 상생을 위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주택협동조합 같은 것이다. 주택은 공급과 수요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 기업이 지어서 큰돈을 남기고, 사들인 사람은 투기를 하고, 그러니까 소비자는 적절한 주택을 못 갖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협동조합은 중간의 거품을 다 없애버리니까 원하는 집을 가질 수 있다. 조합원이 1인 1표를 가지는 협동조합은 가장 민주적인 제도다.”

-지난 1년간 사회적 경제의 성과는 어떤가.

“사회적 경제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다. 서울 성산동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경우 아이 보육 공동체에서 시작해 마을경제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보고 ‘갑자기 서울에 무슨 마을이냐. 사회주의 하자는 것이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협동조합이 몇천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그런 인프라를 만들려고 했다. 사회적경제지원센터·협동조합상담지원센터 건립, 협동조합 도시 선언 등을 만들고 홍보했다. 직접 나서는 것은 시민이다. 이제 ‘세팅’은 됐고 3년만 지나면 서울의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것이다.”

-서울시에 납품하는 사회적 기업도 있나.

“연간 4조3000억원 정도 규모다.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협의해 사회적 기업의 납품처를 더 늘리려고 한다.”

-2004년 독일을 기행한 뒤 쓴 책 ‘독일사회를 인터뷰하다’를 봤다. 독일사회를 보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

“이상적인 사회는 없다. 설사 좋은 사회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후퇴하고 정체도 된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수많은 노력이 큰 바람을 일으키다보면 그 사회는 선진화하게 돼 있다. 한국 사회는 자랑할 만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정체상태다. 새로운 변화와 도약이 필요한데 독일에서 배울 것이 정말 많다. 안정된 정부 시스템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한목소리로 협의하는 정치권도 인상적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활동가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한때 스스로를 ‘2등 시민’이라고 표현했던 옛 동독 주민이 지금은 서독 주민과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도 독일 사회의 힘이다.”

-독일은 협동조합을 태동시켜 유럽 전역으로 전파한 국가다. 한국의 협동조합이 독일처럼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토양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일도 자신의 문제를 남이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한 행정·재정적 인센티브를 주고 나머지는 시민 몫이다. 한때 서울시가 사회적 기업에 1년에 얼마, 딱 정해진 만큼만 주고 지원을 끊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어떤 천재라도 1년 만에 사회적 기업을 성공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3년, 5년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지원하라고 했다. 서울시는 기업에 장소와 금융 지원, 컨설팅을 해주고 나머지는 시민이 하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유럽처럼 사회변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창출에 치우쳐 있다. 이상적인 사회적 기업은 무엇인가.

“사회적 경제는 결국 사회와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연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갖춰야 되는 것이 바로 일반 기업과의 차이점이다. 중요한 것은 최종 수익이 아닌 공공성과 공익성이다.”

-독일의 사회적 기업은 기부금과 민간재단·지자체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받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에 의존하는 측면이 많은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정부 지원금은 ‘꼬리표’가 있다. 보고서 작성 등 지나치게 요구하는 게 많다.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관심도 많아졌고 크라우드 펀딩 등 다양한 재원조달 방식이 마련됐다. 비온 뒤 만물이 솟아나듯 이런 분위기가 정착되면 더 나은 환경이 될 것이다.”

-지난해 협동조합특별법이 통과되면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경계해야 할 부분은 없나.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사회적 기업은 결국 자기 발로 서야 한다. 초기에 과도한 지원을 받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최근 종로 귀금속상가 주민들이 우리에게 도심 사업에 대해 몇 가지 요구를 하고 있는데 제가 여러 차례 ‘퇴짜’를 놨다. 그러니까 점점 가져오는 안이 좋아지더라.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뿌리를 깊이 박고 물길을 찾아야지 그저 유행이라고 따라나서면 성공할 수 없다.”

정리=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