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지현] 乙들에게 전하는 0.7 인생
						입력 2013-05-10 19:08  
					
				한국인들의 생애지도가 변하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1960년대 52세였으나 지금은 80세가 넘었다. 곧 100세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니, 은퇴 후 또 한번의 인생계획을 세워야 할 정도로 삶이 길어진 것이다. 과거 30년 일하고 적당히 노후생활을 하던 것과 달리, 이젠 30년 일하고 30년을 더 일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번스 뉴가튼 심리학과 교수는 55세 정년 기준으로, 은퇴 이후의 시기를 3단계로 구분했다. 55∼75세를 ‘영 올드(young old)’, 76∼85세를 ‘올드 올드(old old)’, 그 이후는 ‘올디스트(oldest)’로 나눴다. 특히 ‘영 올드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고학력, 풍부한 경험과 정보, 균형감각 등을 지닌 새로운 노년층으로서 사회의 주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영 올드 세대는 갑과 을의 전쟁에서 항상 을이다. 정년이 연장된다고 했으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평생 열정을 쏟았던 직장에서 물러나야 하고,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히말라야의 노새처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아직 낙심하긴 이르다. 0.7 인생이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같은 세대에 비해 사회·생물학적으로 훨씬 젊게 산다.
최장수국 일본에서 ‘0.7 곱하기 인생나이’란 계산법이 회자되고 있다. 이 계산법은 장수시대의 실상을 반영한 것으로, 현재 나이에 0.7을 곱하면 현재의 인생 나이가 나온다. 예를 들면 실제 나이가 50세인 사람은 인생 나이 35세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솔깃한 말이다.
사실 미국과 일본에서 75세에서 병이나 허약체질, 소위 노인병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은 5% 미만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늙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경험이 쌓여가는 것으로 정보사회화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많다.
0.7 인생나이를 인식하며 사는 ‘영 올드’ 세대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직장에서 은퇴했다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장에서 벗어났을 때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진짜 인생은 회사라는 조직을 떠나 은퇴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다.
장수시대에 진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이다. ‘영 올드’ 시기엔 삶의 속도를 좀 늦추고 미처 돌보지 못했던 것을 돌아봐야 한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직장일 하느라, 집안일 하느라, 아이들을 돌보느라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둘씩 떠올려 보자.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 걷거나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겨보자. 지금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싶었는지를 말이다.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지금부터 그 일에 매진하면 10년 후엔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경제활동도 가능하다. 관심 분야의 책을 30권만 읽어도 다른 사람보다 더 앞서 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또 책 읽는 것이나 글 쓰는 것이 좋은 사람은 오늘 마음에 드는 시집 한 권을 사서 노트에 옮겨 보자. 99세에 시집 ‘약해지지 마’를 낸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처럼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즐길 권리와 가치가 있다.
자신도 즐겁고 남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는 자원봉사나 캠페인 참여도 기쁨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노숙자나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봉사, 일일 캠페인의 자원봉사 등에 과감히 참여해보자. 타인에게 너그러워지고 베푸는 삶을 살면,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그만하면 멋있어. 괜찮아”라고 스스로 격려한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키워갈 수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정의 행복이 중요하다. 행복한 부부의 경쟁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화목한 부부는 정서적 안정감과 심리적 행복감을 누리기 때문에 건강하고 장수한다. 은퇴 후 최고의 재테크는 부부관계 개선이란 말이 있다.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갑-을 관계가 아닌 을들의 무한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0.7 곱하기 인생나이’로 사느냐 아니냐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지현 종교부 차장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