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숲 교향곡
입력 2013-05-10 19:08
“죽음이여, 오고 싶은 때에 언제든지 오라. 나는 너를 맞으리라. 그러면 잘들 있기를…”
누가 봐도 이 글은 자살을 앞둔 사람이 남긴 비장한 유서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쓴 당사자는 베토벤이다. 당시 그는 청각장애로 고통을 겪으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극단적인 상황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 창작 활동을 재개했고,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전원교향곡의 악상을 덤으로 얻기까지 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마지막 피난처로 삼았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울창한 ‘숲’ 덕분이었다.
숲이 우울증을 감소시키고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 결과로 증명되었다. 서울백병원 김원 교수팀이 우울증 환자들을 숲속치료 그룹, 병원입원치료 그룹, 외래진료치료 그룹으로 나눠 똑같은 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숲 속에서 치료한 그룹의 우울증 증상이 훨씬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숲 그룹의 완치 효과가 외래 그룹의 12배 이상이었다.
1990년대 초 유럽에서 탄생한 숲 유치원은 아이들이 맨발로 흙길을 뛰어다니고 곤충과 돌멩이 등의 자연교구로 노는 것이 교육과정의 전부다. 그런데 독일에서의 연구결과 숲 유치원 아이들이 일반 유치원 아이들보다 수업집중도 및 창의성, 상상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화초를 사무실에 둘 경우 남자는 아이디어 건수가 15% 증가하고 여자는 문제를 더 유연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미국 산림청의 연구는 숲이 인간의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호리비단벌레라는 해충으로 인해 물푸레나무에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과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비교해본 것. 그 결과 놀랍게도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5000여 명, 하기도호흡기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6000여 명이나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는 자율신경을 조정해 심신을 안정시키고 정신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숲 속의 천연 흙 속에 존재하는 마이코박테리움 백케이라는 박테리아는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 수치와 학습능력을 증진시킨다.
신록의 계절, 5월의 숲에는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켜주는 온갖 요소들로 가득하다. 바야흐로 숲 교향곡의 장엄한 연주가 시작된 셈이다.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