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책값이 비싸다는 당신에게
입력 2013-05-10 19:08
첫 책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글항아리)을 내고 나서 얼마 뒤의 일이다. 대학 친구와 통화하다가 농담 삼아 “얘, 한 권 사주는 게 어떠니”라고 했다. “지금 광화문 교보문고에 있어”라는 그 친구, 직장 여성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0% 깎아줘, 2000원 싸거든. 나중에 집에 가서 주문할게.”
그 친구가 매력을 느낀 온라인 서점의 할인이 결과적으로 독자에게 유리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온라인 서점은 10% 할인(신간의 경우) 외에 추가 마일리지 및 경품 제공까지 할 수 있어 독자를 한껏 유혹한다. 각종 이벤트도 있다. 시공간적 제약이 없는 온라인의 특성은 대형 온라인 서점의 독점력을 키운다. 예스24, 인터파크 등 대형 온라인 서점은 출판사의 ‘슈퍼 갑(甲)’이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의 할인 비용은 출판사 몫이다. 그만큼 출판사들이 온라인 서점에 넘기는 책 공급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갑의 지위를 내세워 각종 이벤트 비용까지 부담시키면 출판사들로서는 책값을 올려 보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욕먹는 건 출판사다.
출판사가 아우성이다. 경제가 나빠서, 값이 비싸 책이 팔리지 않아서다. ‘2012 한국출판연감’(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서적 출판업 매출은 2008년을 정점으로 마이너스 행진이다. 신간을 못 내는 곳이 부지기수다. 낮에는 책 만들고 밤에는 대리운전 뛰는 눈물겨운 사연의 출판사 사장도 있다.
출판사들의 사재기는 유례없는 출판 불황에서 더 유혹적일 것이다. 일단 베스트셀러 집계 상위에 오르면 매출은 탄탄대로이니까. 최근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황석영 작가의 ‘여울물 소리’ 등을 사재기한 것으로 방송에서 고발되면서 고질적 관행은 새삼 사회문제가 됐다.
여기서 생각을 바꿔보자. 책값이 비싸다는 그 생각 말이다. 평균 책값(교과서 등 제외)은 2003년 1만980원에서 지난해 1만3000원 선으로 올랐다. 하지만 다른 품목보다는 덜 올랐다. 책은 1980년 기준 대비 지난해까지 72% 올랐는데, 자장면(98%), 설렁탕(93%), 담배(78%)보다 덜 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생필품 혹은 기호품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선뜻 지갑을 꺼내게 만드는 고급 드립커피 한 잔처럼 문화적 사치의 기분도 주지 못한다. 사실 책은 읽으나 읽지 않으나 티가 덜 난다. 독서로 쌓은 지식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모르고, 책이 키워준 내공과 인격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투자 대비 회수가 늦은 것이다. 스마트폰도 책을 밀어냈다. 하지만 10년 후의 성공은 손 안의 휴대전화가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 두어 잔 값으로 살 수 있는 책 안에 있다.
책은 국가 차원에서도 키워야 할 자산이다. 출판 산업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정부가 한때 ‘스크린 쿼터’로 보호해준 덕분에 국제경쟁력을 키운 영화산업보다 크다. 한국출판인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0년 문화 콘텐츠 산업의 국내총생산(GDP) 70조원 가운데 출판은 23조원을 차지해 영화의 3조5000억원에 비해 기여도가 훨씬 더 컸다. 영화 게임 등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토리 산업의 원천이어서 기여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완전도서정가제 시행을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이번 정부는 문화융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과도한 할인 경쟁을 막아 출판사와 서점을 살리는, 그리고 국민과 국가 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완전도서정가제 시행이 그 첫 업적이 되었으면 한다.
손영옥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