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별 피눈물… 재회의 눈물로 씻었다
입력 2013-05-10 17:33
美 입양 보낸 아들 28년만에 만나다
고봉준 목사 스토리
“저는 늘 친부모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편지를 쓰면서도 이 편지가 전달될지 못할지 마음을 졸이며 쓰고 있습니다. (중략) 저를 만나시는 것도 그리고 제게 답장을 주시는 것도 모두 두 분의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의 만남을 원치 않으신다면, 전 용기를 잃을 것입니다.” 고봉준(57) 목사는 2011년 3월 24일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날 저녁 사마리아교정선교회 대표로 홍성교도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귀가한 그에게 아내는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자신을 찾는다는 내용의 편지가 미국에서 왔다는 것이다. 다음 날 한걸음에 편지가 도착된 입양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에 찾아갔다. 함께 보내온 사진에는 한국인 남편과 미국인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있었다. ‘혹시…’라던 순간, 편지 끝에 또렷이 적혀 있는 한국 이름 ‘고모일’을 보고 그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터뜨렸다.
그 이름은 28년 전 고 목사가 피눈물을 흘리며 생이별해야 했던 아들에게 지어준 것이었다. 미국이름 ‘니콜라스 다니엘 하트랩’으로 살아온 그가 영어로 쓴 편지를 번역한 내용을 읽어보고 고 목사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이 자신을 향한 그리움을 조심스럽게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고 목사는 미국으로 바로 날아갔다. 아들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하며 용서를 빌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받아들였다. 고 목사 부자는 꿈같은 3일을 보냈다. 고 목사는 아들을 만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다. 아들과의 재회는 신앙의 열매가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12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고 목사는 중2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등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그의 삶은 신산했다. 일용 노동자로 전전하며 허랑방탕하게 살던 중 21세에 첫 사랑을 만나 교회로 인도됐다.
“당시 베다니교회(현 한국중앙교회)의 담임이었던 최복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체험했어요. 누가 내 몸을 지나가며 터치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이 붙는 느낌이었어요. 이때 언젠가 부흥사가 되고 교정사역을 하겠다고 서원했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싸움에 휩쓸려 폭력 혐의로 실형을 살았다. 넝마주이 소굴에 살던 1982년 비슷한 처지의 한 여자를 만나 사귀면서 이듬해 11월 25일 아들을 낳았다. 자식은 그에게 새로운 기쁨이었으나 그것 역시 순간이었다. 아이 엄마와 곧 헤어졌고, 법적으로 아들을 호적에 올릴 수도 없는 상태였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입양이었다고 고 목사는 털어놨다.
“제 새끼를 버린 놈이라는 죄책감에 괴로워 짐승 같은 삶을 살며 술 먹고 행패부리던 저를 왕초가 죽지 않을 만큼 팼어요. 근데 이때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매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이 제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그 길로 기도원에 갔다. 금식하며 통렬히 기도했다. 이후 술 담배를 끊고 교회 새벽기도에 갔다. 신앙의 깊이가 더 해지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신학을 공부해 마침내 목사 안수도 받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 임종달 목사는 그때 3년 6개월간 고 목사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위해 기도했다. 목사가 된 후에도 불과 2년 전까지 화장지, 생선판매는 물론 고물 수집과 노동일까지 하며 선교비를 벌어 교정사역을 했다. 그는 현재 구로순복음교회 협동목사, 법무부 교정위원으로 사역하며 간증집회도 하고 있다. 그의 헌신성이 인정돼 2001년에 기독교 세진회의 세진 대상을 받았고 2006년에는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미국으로 입양된 아들은 엔지니어인 좋은 양부모를 만났으나 학교에서는 왕따, 인종차별을 당했다. 아들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탁월한 성적으로 중, 고 과정을 마친 데 이어 밀워키 위스콘신대에서 도시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일리노이주립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에서 만난 백인여성과 결혼, 세 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성인이 된 후 2010년부터 입양기관을 찾아 친부모를 찾던 중 2011년 양아버지가 남긴 주소를 단서로 고 목사를 찾았다.
미국에서의 재회 2년여 만인 지난 9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부자는 뜨거운 포옹을 했다. 아들은 한양대에서 열리는 국제다문화대회에 강사로 초청돼 이날 입국했다. 14일까지 한국에 있는 동안 행사 주최측이 제공하는 호텔 대신 아버지 집에서 지내기로 한 모일씨는 “이번에는 아버지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입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한국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무리 가난해도 자녀는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영어를 모르는 아버지를 위해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아들과 기쁨의 재회를 한 고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탕자를 사랑하고 죄사함과 성령을 부어주셔서 주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버렸던 아들도 28년 만에 상봉케 하시고 마음속 깊이 묻어둔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주고 용서해주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벅찬 느낌을 털어놨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