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아비와 자식의 마음이 서로에게 돌아갈 때

입력 2013-05-10 17:26


우리말 첫 구약 성경이었던 ‘셩경젼셔’(1911년)의 마지막 절에는 “져가 쟝차 아비된 자의 마음으로 그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된 쟈의 마음으로 그 아비를 효도하게 하리라”(말 4:6)는 말씀이 나온다. 아마 첫 독자들은 성경에 ‘아비의 사랑’과 ‘자식의 효도’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완전한 가부장적 농경 사회에서 아비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개념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생소하였을까. 그 당시 우리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얼마나 엄격하였던가. 또한 유교 문화권 속에 수천 년을 살아오던 독자들은 전통의 핵심 가치인 효도가 성경에 나오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비록 기독교인들이 조상에게 제사는 안 드려도 효도를 버린 것은 아니지”라며, 가정을 세우고 나아가 전도하는 데도 큰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사랑’도 ‘효도’도 없다. 다만 장차 엘리야가 오면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개역)로 나온다. <셩경젼셔>의 번역자들이 참고한 KJV(제임스 왕역, 1611년)나 ASB(미국성서공회 표준역, 1901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마지막 절에서 원문의 ‘돌아가다’를 부모의 자식 사랑과 자식들의 부모 효도로 담아낸 것은 상상을 초월한 탁월하고 창조적인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혹은 고맙게도, 우리의 번역은 한문 성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우리말 성경보다 약 100년이 앞선 한문성경의 대표본(1804년)에는 “그가 장차 아버지로 그 자식에게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그 아버지에게 효도하게 하리라”(彼將使父慈基子 子孝基父)가 나온다. 또한 우리의 번역보다 9년 앞선 한문성경인 쉐레쉐브스키역(1902년)에는 ‘마음’(心)을 첨가하여 “아버지의 마음이 그 자식에게 자애를 베풀고, 자식의 마음이 그 아버지에게 효도하게 할 것이다”로 개정된다(彼將使爲父心慈基子爲子者心孝基父). 이 번역의 전통은 이후에 나온 화합본(1919년)에는 사라지며 ‘전향한다’로 번역된다(他必使父親的心 轉向兒女 兒女的心轉向父親). 흥미롭게도 일본어 성경들에는 ‘자애’와 ‘효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우리말 초기 성경번역자들은 초기 한문성경의 전통을 따라 ‘자애’와 ‘효도’를 본문 속에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원문 성경에도 없는 말을 번역 성경 속에 첨가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초기 성경번역자들은 원문의 자구

를 가감 없이 표현해 내는 것을 번역의 목표로 삼은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원문의 형식보다는 그 의미를 최대한 드러내려고 하였으며, 이것을 통하여 전통적인 사상과 소통하는 것이 기독교를 변증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동양사상의 진수를 담은 대학(大學)에서 인륜의 근본과 덕의 완성(明德)으로 제시하는 자녀의 효도(孝), 형제의 우애(弟), 부모의 사랑(慈)인 효제자(孝弟慈)를 구약성경의 마지막 절에 담아냄으로써, 기독교 신앙이 전통을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아비의 마음은 자녀들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은 아비에게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말한다(4:6). 그렇지만, 우리는 상처받고 깨어진 가족 관계에서 서로에게 자발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력이 없다. 따라서 말라기는 장차 올 선지자 엘리야가 이 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신약성경에서는 그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한다(눅 1:17). 그러나 세례 요한은 정작 자신이 그 엘리야가 아니라 예수가 그 엘리야이며 장차 올 ‘그 선지자’라고 증거한다(요 1:21). 사실, 예수는 어린이를 안고 축복하였으며(막 10:16), 부모를 공경할 것을 가르치고(마 15:4), 몸소 실천하였으며(눅 2:51),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돌보셨다(요 19:27).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을 세우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하나님의 식구로 우리를 회복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성령의 생명력으로 아비와 자식의 마음이 서로에게 돌아가 효도와 우애와 사랑(孝弟慈)으로 교통하는 친밀한 가정을 이 땅에서 일구어 가는 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