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입력 2013-05-10 17:31

어떤 마을의 큰 성에 거인이 살고 있었다. 거인의 성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거인이 몇 년 동안 성을 비운 사이 동네 아이들이 정원에 와서 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인이 성으로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내쫓았다. “이곳은 오직 나만의 정원이야”라고 말하면서 그는 혹 아이들이 들어오면 “고발하겠다”는 팻말까지 세워놓았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아이들이 오지 않자 정원에는 봄도 찾아오지 않았다. 다른 곳에는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도, 거인의 정원은 늘 눈보라가 휘날리고 우박과 서리가 내리는 겨울만 계속됐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에겐 봄이 찾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꽃, 어린이

그러던 어느 날 정원 담벼락 사이의 구멍으로 아이들이 들어와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봄이 다시 찾아왔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나무마다 푸른 잎사귀와 꽃이 만발했다. 구석에 있던 한 아이만은 유독 키가 작아 나무에 올라갈 수 없었다. 나무는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었고 위에서는 찬바람이 몰아쳤다. 그제야 거인은 깨달았다. “정원에 봄이 안 온 이유를 알겠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거인이 다가가서 아이를 나무에 앉혀주었다. 그러자 나무는 봄으로 변했고 새들이 찾아왔다. 거인은 커다란 해머로 담장을 허물어 정원을 열어 놓았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세월이 흘러 거인은 늙었고 안락의자에 앉아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했다. 거인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한테는 꽃이 많이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아이들이야.”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거인이 나무 위에 올려 주었던 그 아이만은 그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동네 아이들도 그 아이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거인은 그 아이가 몹시도 보고 싶어졌다. 꽃이며 나무가 휴식에 들어간 어느 겨울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원 후미진 곳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잎들이 반짝였고 빛나는 열매로 충만했으며, 그 아래에 거인이 다시 만나고 싶어하던 아이가 서 있었던 것이다. 거인은 정원으로 달음질해 아이 앞에 섰다. 아이의 조그마한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고 발등에도 상처가 있었다. 거인은 분노하며 아이를 학대한 자를 칼로 동강내겠다고 소리쳤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다. 이것은 사랑의 상처이니라. 그대는 언젠가 나를 그대의 정원에서 놀게 해 주었다. 오늘은 내가 그대를 나의 정원으로 인도하리라.” 그날 오후 아이들이 정원으로 들어왔을 때 거인은 꽃이 만발한 나무 아래에서 죽은 채로 누워 있었다.

이 이야기는 오스카 와일드의 ‘자기만 아는 거인’의 줄거리다. 나무와 꽃과 아이들이 어우러진 정원, 그 아이와 거인 그리고 십자가 사랑의 흔적과 천국이라! 문학적 상상력도 놀랍고 신학적 은유는 더 놀랍다. 나는 근래에 이르러 프랑스 화가 르동의 작품을 좋아하게 됐다. 르동은 젊은 시절 종교적 성향의 내면화를 많이 그린 화가다. 그런데 말년에 이르러는 모든 것을 접고 꽃과 어린이들을 그리다가 생을 마감했다. ‘자기만 아는 거인’이 꽃이 만발한 나무 아래에서 죽었듯, 내면화의 거장 르동은 꽃과 어린이를 품에 안고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이런 건 꽃과 어린이가 닮은꼴이기에 가능하다. 타고르의 시도 떠오른다. 눈먼 소녀가 시인에게 다가와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시인은 눈물 없이는 시를 쓸 수 없었다. “네가 준 선물은 정말로 아름답다. 어여쁜 소녀야! 너는 꽃처럼 아름다운데, 꽃처럼 보지를 못하는구나.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황종건 역)

서양문화는 어린이를 인간의 꽃으로 본다. 그래서 무얼 하더라도 어린이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혜택과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하지만 고대 로마사회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로 간주했다. 가부장의 권한은 절대적이어서 자식을 팔 수도 있었고 신생아를 버리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 기원전 1년 7월 17일에 작성된 유명한 파피루스 편지가 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로마병사로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파견근무 중이었다. 그는 편지와 함께 봉급을 송금하면서 자기 아내가 여아(女兒)를 낳으면 갖다 버리고 남아(男兒)를 낳을 경우만 키우라고 강조한다.

어린이 사랑은 기독교 전통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시대는 생명존중 사상에 입각해서 고대 로마의 절대적 가부장권을 금지한다. 아울러 콘스탄티누스는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의지해(마 18:5) 313년 5월 13일에 어린이 보호법을 공포한다. 이 법에 따르면 극도의 빈곤으로 아이를 양육하기 힘든 경우 국고와 황실재산을 털어서라도 아이의 양육에 필요한 음식과 옷을 제공하도록 했다. 몇 십년 뒤에는 조티코스라는 수도자가 콘스탄티노플에 유명한 보육원을 세운다. 어린아이에 대한 애정 어린 서양의 기독교 전통을 보면서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의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언제쯤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한영신학대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