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미얀마의 길, 북한의 길
입력 2013-05-10 19:04
미얀마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아웅산 테러다. 1983년 10월 9일, 북한이 당시 버마(현 미얀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폭탄을 터트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강민철·신기철 대위 등이었다. 같은 해 12월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은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남북한과 동시 수교국이었던 버마는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이라는 강수로 대응했다.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웅산 국립묘지를 찾았다. 북한의 테러로 숨진 이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공터에 조화를 놓고 잠시 묵념하곤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국립묘지여서 추모비 건립이 곤란하다는 미얀마 당국의 입장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 2월 외교부가 추모비 건립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에 이른다. 추모비는 테러가 발생한 지 꼭 30년이 되는 오는 10월 9일 세워질 예정이다.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얀마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회담 직후 “평양은 버마를 주목해야 한다. 버마는 개혁하면서 더 많은 무역, 투자,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 계기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뒤 첫 해외 방문국으로 미얀마를 선택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 정부에 북한과의 군사관계를 끝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얀마 군사독재정권은 2007년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단교 24년 만이다. 그러나 2011년 초대 민선 대통령이 탄생한 뒤 민주화와 개혁·개방 정책에 박차를 가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정치범들도 상당수 석방했다. 미국이 미얀마와의 관계 증진을 꾀하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북한이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발전의 길로 접어든 미얀마를 보면서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라는 고민 정도는 하지 않을까.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