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날 국무총리 표창 받는 동방사회복지회 김혜경 부장

입력 2013-05-09 21:07


“국내 입양부모들이 흑인 아이를 안고 있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날이 꼭 올 겁니다.”

동방사회복지회 김혜경(54·여) 부장은 입양인 사이에서 ‘대모’로 불린다. 후덕한 인상과 온화한 성품의 그는 지난 30년간 입양 업무를 담당하며 입양아들의 엄마를 자처해 왔다. 9일 동방사회복지회에서 만난 김 부장은 입양아가 차별받지 않는 날을 꿈꾸며 30년을 보냈다고 했다.

입양의 날(11일)에 김 부장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다. 그가 새 가정을 찾아준 아이만 3000명에 달한다. 그는 작은 생명과 만남·이별을 반복하는 일이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가정을 찾아가는 것이어서 늘 보람이 있다”고 했다.

고교 시절까지 성악을 전공한 김 부장은 교회 담임목사의 권유로 사회복지가의 길을 걸었다. 처음 복지회에 왔을 때만 해도 입양 업무가 잘 와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 번은 입양 가는 아기가 차멀미로 토하는데 나도 모르게 맨손으로 토한 걸 받아냈다. 그걸 본 복지회 동료가 ‘천직’이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도 한 아이의 엄마다.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서른셋에 아들을 낳았다. 정작 자기 아이를 돌봐줄 시간이 없어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복지회에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는 부모의 뒷모습과 남겨진 아이들이 떠올라 이 일을 떠나지 못했다.

김 부장은 아직도 아이를 맡기며 빗속에서 울던 한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부인과 사별해 당장 아이들 먹이고 입힐 돈이 없어 세 남매를 맡기고 간 아버지였는데, 창문으로 내다보니 가로수 밑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 아버지에겐 아이들을 위한 최후의 선택이 입양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탈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1년에 한 번씩 아기를 낳아 맡기고 가는 20대 미혼모가 있었다. 4년 연속으로 아기 4명을 맡기는데,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몸가짐 잘하라’고 타일러도 어김없이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럴 땐 정말 안타깝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30년간 입양을 담당하며 터득한 그만의 노하우도 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도 반드시 이별에 대해 부모가 설명하게 한다. 김 부장은 “‘엄마가 금방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날 때 아이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친부모에 대한 분노를 평생 안고 간다”며 “힘들더라도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고 했다.

최근 공개입양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입양부모를 칭찬하면서도 입양아에 대해선 손가락질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입양아란 이유로 차별받는다는 어려움을 상담할 때 가장 마음 아프다”며 “특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다른 학부모나 교사들이 ‘남의 자식 키운다’며 수군거려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그의 눈에 우리나라는 입양 후진국이다. 김 부장은 “1980년대 미국에 갔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동양 아이들을 안고 다니는 미국인을 보면서 ‘입양 선진국’을 피부로 느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핏줄보다 키우는 정을 더 소중히 느끼도록 인식 개선에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