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민화 80여점 공개

입력 2013-05-09 19:21


조선시대, 서화 가격은 어마어마했다. 서울 남산의 집 한 채 값을 치렀다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 그림 소장은 왕이나 왕족, 부유한 양반층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19세기 들어 신분제 질서가 무너지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인과 서민들도 서화 감상 호사를 흉내 내고, 그림으로 안방을 장식하고 싶었다. 그런 욕구에 부응해 나온 게 민화(民畵)다.

민화의 성찬을 즐길 기회가 생겼다. 서울 호림박물관이 강남구 신사동 전시장에서 10일부터 갖는 ‘민화, 상상의 나라-민화여행전’. 30여 년 수집한 민화 중 엄선한 80여점을 공개한다.

민화는 궁중회화, 사대부 회화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틀을 완전히 벗어버렸다. 떠돌이 화가가 그리기도 한 민화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함, 진한 채색이 주는 생동감, 기발한 상상력 등으로 서민의 분출하는 에너지와 소망을 담았다. 산수화 등을 흉내 낸 것도 있지만 부부의 화목, 자식의 성공, 장수의 염원 등을 담은 화조도(花鳥圖) 책가도(冊架圖) 문자도(文字圖) 등 민화 특유의 양식도 많다.

사실감을 무시하고 비례도 맞지 않아 문인화나 산수화, 궁중회화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극도로 단순화해서 장식미가 한껏 살아난다. 각각 따로 그리던 화조도, 문자도를 병풍 한 폭 안에 모두 집어넣는 욕심도 볼 수 있다. 전시는 각각 화훼(꽃과 풀)와 영모(동물), 책거리와 문자도, 산수화와 고사 인물 등 세 분야로 나눴다. 기존에 보기 힘들던 특이한 양식이 많아 눈이 즐겁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02-541-3523).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