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인들, 폐허속 일어난 건 놀라운 일”
입력 2013-05-09 18:51 수정 2013-05-09 18:52
‘세계평화페스티벌 아리랑’ 공연장인 워싱턴 워너극장의 1층과 2층 VIP석에서는 미국인 및 한국인 한국전 참전용사 50여명이 눈길을 떼지 않고 공연을 지켜봤다. 대부분 8순의 고령인 이들 중 일부는 가족의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탔지만 귀에 익은 아리랑 등이 연주될 때는 박수를 치며 흥을 돋웠다.
1952년 한국에서 근무했다는 로머 에이브럼스(80)씨는 지난해 59년 만에 방문한 한국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한국을 갔다 온 동료로부터 얘기를 들었고, 사진도 봤지만 정말 가보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전 중 가장 치열한 격적지 중 하나였던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했다는 그는 “한국민들이 폐허와 피폐 속에서 이토록 빨리 일어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국전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84) 미 예비역 대령은 단상에 올라 비무장지대의 철조망을 녹여 만든 보은메달을 받았다. 그는 “한국전 관련 상을 받을 때 언제나 그렇지만 매우 영광스럽다”면서도 “이 메달이 한반도에서 영구적인 평화가 아직 요원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듯하다”고 말했다.
웨버 대령은 “한국과 미국은 당연히 문화가 다르지만 지향하는 가치가 같다”면서 “정전 60주년은 이러한 동질성을 재확인하는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재활을 돕는 한 민간단체가 한국에만 오면 최첨단 보조의수와 의족을 무료로 제작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정말 감사하지만 그러한 돈과 자원은 젊은 상이용사에게 가야 하는 게 맞다”며 “오랫동안 나는 ‘두뇌’만 가지고 많은 일을 해 왔다”고 말했다.
보은메달을 받은 참전군인 중에는 볼니 워너(86) 예비역 대장도 있었다. 그는 1950년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 보병 21사단의 소위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는 “아들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1976년 한국에 부임해 1년을 근무했고, 큰딸은 영어 교사로 한국에 거주했었다”며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이병희 재향군인회 미 동부지회장은 미국인 참전군인들과 ‘미국이 참전한 해외 전쟁터 중 한국만큼 부흥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는 등의 얘기를 오늘도 나눴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많은 미국인 참전군인들이 민간단체가 워싱턴까지 와서 이런 행사를 여는 데 대해 감사하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미군 여러 행사에서 만나다 보니 서로 거의 다 얼굴을 알 정도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김진규(79)씨는 “6·25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아주 기쁘다”며 “오랜 시간이 흘러 한국 참전용사도, 미국 참전용사도 많이 죽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1964년에 미국으로 이민 왔다는 김씨는 “워싱턴DC 근처에 살고 있는 한·미 양국 참전용사들은 1년에 한 번씩 정전협정날인 7월 27일 모여서 기념행사를 갖는다”고 전했다.
6·25 참전 유공자회 위싱턴지회 이태하(79) 회장도 “워싱턴 부근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우리나라 참전용사들이 500여명 있는데, 다들 연세가 많아 여러 행사에 참석하기 힘들다”며 “한국에서 좋은 행사를 만들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