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출판계 낡은 관행 뿌리 뽑을 제도 마련하라

입력 2013-05-09 18:44

출판계의 고질병인 책 사재기 추문이 또 터졌다. 이번에는 한국문단의 거목인 황석영씨가 작가 생활 50년을 기념해 발표한 소설 ‘여울물소리’가 포함돼 충격이 크다. 황씨는 “나의 문학 인생 전체를 모독하는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작품을 절판시켰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성한다”고 밝혔다. 지식산업의 중추이자 문화 콘텐츠 생산의 핵심인 출판계가 독자를 기만하는 ‘범죄 행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부끄러워하는 책 사재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베스트셀러에 목을 매는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현실 때문이다. 독자들이 작가나 작품성보다 얼마나 팔렸는지를 먼저 따지는 상황에서 사재기라도 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것만큼 효과적인 마케팅은 없다. 비용은 권당 3000원 정도에 불과하고, 성공하면 수십배의 이익이 남는다.

출판인들은 ‘베스트셀러 1∼20위 가운데 절반은 사재기 의심이 간다’ ‘다들 사재기에 나서는데 나만 외면하기 힘들다’라고 고백한다. 심지어 월 1만원이 안 되는 회비를 내면 신간서적 3∼4권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수천명의 회원을 모아 출판사와 사재기 협상을 벌이는 전문업체가 활개를 치는 실정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출판인의 양식과 도덕성 회복이다. 베스트셀러만 좇는 독자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신력 있는 베스트셀러 집계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대형서점과 주요 온라인 서점이 약간만 협조한다면 이 같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들이 판매정보회사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도서 판매량을 집계하고 있다.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사재기는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운데다 각종 편법을 동원한 전문업체의 ‘유사 사재기’까지 성행해 근절이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려면 한 번 적발되면 끝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현행 과태료 부과 대신 벌금형 등의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