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타짜들’… 몰카·이어폰 첨단장비 동원 고수들이 훈수
						입력 2013-05-09 18:13   수정 2013-05-09 22:22
					
				서울에서 바둑교실을 운영하는 임모(55)씨는 2011년 내기바둑꾼 이모(55)씨에게 ‘호구’를 물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씨는 같은 해 6월 바둑을 좋아하는 재력가 안모씨를 꾀어 서울 대치동의 한 기원으로 유인했다. 안씨와 맞붙을 바둑 상대로는 일명 ‘뚱돼지’로 불리는 다른 이모씨가 나섰다.
바둑 ‘집’ 수에 따라 수십만원이 걸린 처음 몇 판에서 안씨가 이기자 임씨 등은 “판돈을 100만원 단위로 키우자”고 바람을 잡았다. 이때부터 뚱돼지의 실력이 달라졌고 안씨는 몇 시간 만에 850만원을 잃었다. 이후에도 임씨는 안씨를 데리고 서울 대전 등 기원을 돌며 10차례 내기바둑 판을 열어 1억400만원을 뜯어냈다. 하룻밤 새 2600만원을 따기도 했다. 임씨는 판돈에서 수수료 10% 정도를 떼고 승자에게 줬다. 안씨는 ‘이길 수 있어 보이는데 체력이 달리고 운도 없었다’는 생각에 내기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둑 6∼7급 수준인 안씨는 처음부터 1∼2급 이상 실력을 갖춘 임씨 일당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임씨 등은 ‘호구 모집책’ ‘선수(대국 진행)’ ‘멘트 기사(훈수꾼)’ ‘꽁지(도박자금 대여)’ 등으로 역할을 나눠 움직였다. 선수로는 ‘노다리’ ‘영감’ ‘박사장’ 등의 별칭을 가진 내기바둑계에서 이름난 고수들이 투입됐다. 이들은 각종 첨단 장비도 동원했다. 선수가 티셔츠 단춧구멍에 몰래카메라를 달고, 초소형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바둑을 두면 다른 고수들이 근처 차량에서 모니터를 봐가며 “우측 몇 번 줄” 등으로 훈수를 두는 식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장영수)는 9일 임씨 등 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종적을 감춘 뚱돼지 등 선수들과 장비 공급책은 추적 중이다. 임씨는 “나도 제대로 바둑 교육을 받았으면 프로기사가 됐을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검거된 이들의 행색이나 자기들끼리 부르는 별칭 등을 보면 영화 ‘타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같았다”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