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파문 출판업계, 무명작가엔 ‘슈퍼갑’
입력 2013-05-09 18:12 수정 2013-05-09 20:03
출판업계의 잘못된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유명작가 작품은 사재기를 해서라도 베스트셀러에 올리려 하는 반면 무명작가에게는 불합리한 계약을 강요하거나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작가 박모(33·여)씨는 지난해 5월 장편소설 초고를 완성해 몇몇 출판사에 보냈고 한 중견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서에 발간 시기, 계약금, 인세 지급 시기 등이 적혀 있지 않았다. 최종 원고가 늦을 때 박씨가 물어야 하는 위약금은 있었지만 출판사가 계약을 파기할 경우 보상 문제는 빠져 있었다. 지난해 11월 이 출판사는 박씨에게 “계약은 없던 일로 하고 다른 출판사를 찾아보라”고 통보했다. 박씨는 “너무 원통해 관련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더니 ‘계약 파기는 흔한 일’이라는 댓글이 죽 달리더라”며 “침 발라 놓자는 식으로 계약한 뒤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리면 ‘절대 을(乙)’인 무명작가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저작권을 빼앗거나 인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동화작가 성모(29·여)씨가 쓴 책의 대부분은 저작권이 출판사 소유로 돼 있다.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그런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 이소을(41·여)씨는 “동화 ‘구름빵’을 쓴 작가는 저작권을 출판사에 헐값으로 넘겼는데 그 작품이 대박을 쳐 엄청난 상처를 입고 한동안 작품활동을 접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 출판사에서 출판부수를 속여 인세를 조금만 지급하고 있다는 건 업계에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황석영 김연수씨 사례처럼 유명작가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려는 출판사의 사재기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로부터 사재기 판정을 받아 과태료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베스트셀러 위주의 출판시장 구조를 반복되는 사재기 논란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무명작가의 책은 출판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출판사마다 기존 유명작가들에게 의존하는 분위기”라며 “무명작가의 책을 출간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 계약 때 많은 양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용상 문동성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