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성국] 노사민정 파트너 시대 열자

입력 2013-05-09 17:41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위기 속에서도 홀로 승승장구하는 독일의 경제를 세계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불과 15년 전만 해도 독일은 ‘독일병’에 걸린 환자 취급을 받았었다. 통독의 후유증과 세계적인 불황으로 12%에 육박하는 높은 실업률과 1%대의 낮은 경제성장으로 집권 기민당은 총선에서 패배하고, 1998년 사민당과 녹색당이 최초로 ‘적·녹 연립내각’을 구성하며 집권에 성공한다.

연립내각을 이끌게 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연대(Alliance for Jobs)’라는 기구를 야심 차게 출범시켰다. 이것은 정부, 노동조합, 재계 대표가 고용 촉진을 위해 현안을 논의하고 실천에 옮기는 경제 및 사회개혁 협의체다. 이 기구에서는 근로시간 정책, 해고자 보호, 직업훈련 등 노동문제뿐 아니라 조세정책과 사회보험 제도의 개혁 등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모든 이슈들이 논의됐다.

여기서 설정된 개혁의 방향은 재계와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며 장기 실업자 수를 획기적으로 감축하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직업훈련을 강화하며, 노조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기업은 대량 감원을 자제하는 등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고 한 발씩 양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또한 노동시간의 유연화, 사회보험 및 연금제도 개선 등 그간 당사자들이 양보하지 않아 좀처럼 풀기 어려웠던 난제들도 해결돼 갔다.

그 결과 독일은 2000년 한 해에만 60만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됐으며, 노동시간 유연화에 따른 비정규 노동이 확대됐고, 기업연금의 개인분담금을 늘려 연금재정을 확충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IT산업에 대한 고용을 확대하는 한편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업훈련 기회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슈뢰더 행정부는 3당사자 간 입장 조율에 있어서 일관된 전략과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노사갈등을 노와 사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등 조율사 역할에 실패함으로써 사회연대가 힘을 잃게 되었다. 경제는 다시 악화되었고 결국 2005년에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자민당 연합에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IMF 구제금융 직후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 없이 겉돌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독일의 사회연대는 매우 고무적인 업적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은 15년 전 독일경제가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 증가하는 실업률, 특히 체감 청년실업률이 22%에 달한다. 엔화 약세의 직격탄을 맞아 수출 부진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은 신규 투자를 꺼리고 이윤을 쌓아두고 있으며 부자들은 돈을 숨기고 지갑을 닫고 있어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북한 리스크가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는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 데 동참하기는커녕 생산직 세습을 요구하고 노노 갈등으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누가 봐도 한국경제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판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연대’라고 생각한다. IMF 구제금융 직후 국민들의 금 모으기가 한창일 때 노·사·정 3당사자가 경제재건을 위해 한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댄 것처럼 오늘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호를 살리기 위해 노·사·정 당사자 및 시민단체 대표의 허심탄회한 대화와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

새 대통령에게 바람이 있다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우리나라에 진정한 ‘노·사·민·정 파트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돼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한국형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초석을 놓는 대통령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