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의 위기 해법 ‘어제’에서 찾아라

입력 2013-05-09 17:17


어제까지의 세계/재레드 다이아몬드/김영사

서울대에서 최근 5년간 대출빈도가 가장 높은 1998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총, 균, 쇠’의 저자가 썼다. 게다가 총 744쪽의 만만찮은 두께다. 그런 무게감에 책을 읽기 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총, 균, 쇠’에서 뉴기니 원주민에서부터 현대 유럽인, 일본인에 이르기까지를 비교·고찰해 인류 문명의 발달 속도 차이를 명쾌하게 분석했던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76·사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이번에도 원주민의 세계로 날아가 문명대탐사를 벌인다. 뉴기니 원주민, 알래스카 이누피아크 족, 아마존 야노마모족, 필리핀의 아그타족 등 39개 부족사회가 연구 대상이다. 책 제목은 ‘어제까지의 사회(The World Until Yesterday)’.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여정에선 그런 목적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적지 않았다. 영아 살해, 노인 유기, 산모 학대 등 오늘날의 윤리관으로 보면 비인간적·비도덕적으로 비쳐지는 원시사회의 끔찍한 풍습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며 가감 없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이를 테면,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의 경우 여자는 혼자 분만해야 하며, 분만과 동시에 아기가 선천적 장애가 있는지를 살피고 영아 살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볼리비아 시리오노족이 이주를 앞두고 병든 중년 여인을 버리고 떠나는데, 그녀의 남편조차 작별을 하지 않고 갔다. 후에 그녀는 콘도르(신대륙 맹금류의 일종)에 의해 뼈만 남겨진 채 발견됐다는 인류학자의 목격담도 소개됐다. 인도네시아 다니족의 경우 1961년 벌어진 부족 간 전투에는 6세 소년까지 동원됐다.

이 책이 지난 2월 영국에서 번역 출간됐을 때는 부족사회를 유지하는 소수종족을 폄하했다며 인권단체들이 반발한 것도 이런 탓일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사실왜곡 부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런 ‘비인도적’ 풍습들에 대한 감정적 해석을 경계하는 등 균형적인 문화사적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이런 풍습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한편으로는 현대사회가 도저히 갖지 못하는 그들의 ‘우월한’ 문화를 보여준다. 아기가 울면 현대사회에서는 무시하지만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즉각적으로 포근하게 반응한다. !쿵족 아이의 우는 시간은 네덜란드 아이의 절반에 불과한데, 한 살배기의 경우 울음을 모른체하면 더 오래 운다는 사실이 실험결과로 밝혀진 바 있다.

현대사회의 유모차는 아기가 허리를 수직으로 세우지 못하고 거의 수평으로 누워야 하며, 요즘에 나온 것은 아기가 세상이 아니라 엄마 얼굴을 마주 보는 구조도 있다. 하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아기를 어깨 위에 얹거나 아기 띠로 업기 때문에 아기가 엄마와 똑같은 시야를 공유하며, 똑바른 자세로 옮겨진다. 이런 !쿵족의 아이들은 신경운동계 발달이 미국 아이들에 비해 빠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수렵채집 사회의 양육법 중 유아에게 칼과 불을 갖고 놀게 허락하고, 아이들의 섹스놀이를 묵인하는 등 거북스러운 것도 있지만 현대의 국가가 받아들일만한 것도 있다고 한다.

노인 유기에 대해서도 편견을 보이지 않는다. 굶어죽게 하거나 심한 경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게 하는 문화조차도 노인을 감당하고 먹일 수 있는 사회의 역량과 노인의 유용성, 그 사회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연장자를 대우하기 위한 전통사회의 금기의 지혜를 전하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아란다족은 맛있는 음식은 젊은 사람이 먹으면 끔찍한 재앙이 닥친다는 식으로 유포시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노인, 특히 늙은 남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현대사회에서도 잔존하고 있는데, 가급적 노인들이 죽기 직전에야 상속을 통해 재산 소유권을 자식에게 양도하는 것이 그 예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비교하는 무대는 이처럼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노인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건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위험에 대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의 일상 문화를 넘어선다.

전쟁에 대한 비교는 흥미롭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향해 창을 던져야 하는 부족사회의 전쟁은 잔인하다. 현대사회처럼 국가를 위한 영웅적 희생은 없다. 모두 살아남기 위해 아는 얼굴을 향해 창을 던진다. 적을 죽였다고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이것이 생존을 위한 것이기에 분쟁 해결도 생존 차원이다. 하지만 전통사회의 분쟁 해결은 규모가 작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관계 회복에 목적을 두지만, 국가사회는 잘잘못을 따지는 데 집중한다. 어느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

이처럼 부족사회의 전쟁과 그들의 분쟁 해결방식을 살펴봄으로써 국가 사법제도와 전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 위험과 관련이 있는 그들의 신앙을 통해 왜 세계는 무신론적 사회가 되지 않는지, 종교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살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다중언어 관습을 보면서 언어 공용화를 환영해야 할지, 언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총, 균, 쇠’에서 인류의 탄생과 진화를, ‘문명의 붕괴’에서 문명의 위기와 종말을 얘기했던 세계적 지성 다이아몬드 교수가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는 왜 다시 부족사회로 달려간 것일까. 국가 분쟁, 종교 갈등, 자녀 양육, 인구 고령화, 언어의 소멸, 질병…. 인류가 눈부신 물질문명 속에서 부딪치는 삶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어제에서 찾고자 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부족사회는 600만년간 지속된 전통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1931년 처음 오스트레일리아인에 의해 발견된 뉴기니는 당시만 해도 100만명가량의 주민이 석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전통사회를 낭만적으로 열망하자는 것은 아니다. “전통사회는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지금 사회의 이점에 고맙게 생각할 기회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가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강주헌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