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에 탐닉한 시인 정지용 ‘기탄잘리’ 번역했다

입력 2013-05-09 17:06


고려대 최동호 교수, 이 책을출간한 까닭은

그동안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의 작품을 한국 최초로 번역한 사람은 ‘잔물’이라는 필명의 방정환으로 알려져 있었다. 고(故) 김병철 중앙대 명예교수의 ‘한국근대번역문학사 연구’(1975)에 따르면 방정환은 1920년 6월 ‘개벽’ 1호에 ‘어머님’과 ‘신생의 선물’ 등 두 편의 타고르 시를 번역 소개했고 이후 타고르 열풍이 불어 1925년까지 오천석, 김억 등 여러 번역가에 의해 모두 22번이나 타고르 시가 번역됐다.

하지만 최동호(사진) 고려대 교수는 최근 낸 ‘정지용 시와 비평의 고고학’(서정시학)에서 김병철이 누락한 또 다른 번역자로 정지용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1923년 1월 휘문고보 문우회 학예부에서 발간한 ‘휘문’ 창간호에 정지용은 타고르 시집 ‘기탄잘리’ 중에서 9편을 번역하여 수록했으며 그리스 신화 ‘파스포니아와 수선화’와 ‘여명의 신 오로라’ 등 2편의 신화도 함께 번역 소개했다.”

최 교수는 “이 자료가 누락된 것은 당시 정지용이 학생신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게재지 역시 고등학교에서 발행하는 교지였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런 이유로 문단이나 학계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된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는 타고르 시집이 번역 출간된 적이 없어 정지용이 선택한 원문이 일역판인지 영어판인지 알 길은 없다.

최 교수는 “정지용의 번역시는 김억이 1923년 3월 평양 이문관에서 발간한 시집 ‘기탄잘리’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언어의 절제나 시어의 선택 그리고 행간의 조정에 있어서 오히려 오천석이나 김억을 앞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휘문고보 5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지용의 번역 능력은 선배 문인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학지망생이었던 정지용은 타고르 시를 탐닉하면서 시적 역량을 키워나갔다. 이는 서양문학을 수용하는데 있어 김억 등의 직역 형태 번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수용 단계로의 언어감각을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30년 동안 정지용 시 연구에 몰두해온 최 교수는 이밖에도 ‘박용철과 정지용의 만남’ ‘김기림과 정지용의 문학적 상관성’ 등을 분석함으로써 정지용 시의 문학사적 의미를 결산하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