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파문 커지는 ‘책 사재기’

입력 2013-05-08 18:52

출판계의 고질병인 사재기 파문이 또다시 불거지면서 가뜩이나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다.

SBS 시사 프로그램 ‘현장21’은 7일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가 조작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펴낸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등 3권을 사례로 제시했다.

의혹이 제기되자 자음과모음 강병철 대표는 8일 “모든 권한을 내려놓겠다. 어떠한 유형의 변명도 하지 않겠다”며 “사옥도 매각할 것이고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자음과모음은 편집위원 황광수·심진경씨 등을 주축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3개월 안에 새 전문경영인을 선출키로 했다. 아울러 해당 도서 전량 회수에 나섰다.

2008년 출범한 자음과모음은 1997년부터 문학, 인문, 교양 등의 단행본을 내던 이룸출판사가 모체. 문학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이번 파동을 낳았다는 게 출판업계의 시각이다. 자음과모음은 지난해 10월 남인숙 에세이집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사재기 행위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받기도 했다.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 의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2005년 10월부터 두 달간 서점 판매 현황, 현장 조사 등을 거쳐 사재기 의혹이 있는 책들을 찾아낸 뒤 2006년 새해 벽두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7개 대형 서점에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문제의 책을 제외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재기로 지목한 책과 출판사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출판계 자정 차원에서 업계의 반성을 촉구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사재기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출판계 내부에서 대대적인 자정 노력을 벌였지만 사재기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것이 책 판매부수와 직결되다 보니 사재기 등 부정행위를 통해서라도 일단 베스트셀러에 올려놓고 보자는 출판사들의 행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사들이 온라인 서점 초기 화면에 노출되는 것을 최고의 마케팅으로 여기다 보니 사재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박은주)는 이날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에 관련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사재기는 출판계와 독자에 대한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출판계의 일원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출판인회의는 사재기 처벌 조항(1000만원 이하 과태료)을 과태료가 아닌 벌금형으로 강화하도록 법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사재기를 계속하는 출판사와 이를 조장하는 서점은 그 명단을 업계에 공개할 방침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