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11년 투병 박승일 전 모비스 코치, 눈꺼풀로 쓴 어버이날 편지

입력 2013-05-08 18:24 수정 2013-05-09 13:35


“ㅈㅜㄴlㅁㅇㅔ ㅇㅡㄴㅎㅖㄹㅗ ㄴㅏㅅㄱㅔ ㄷㅗlㅁㅕㄴ ㅎㅛㄷㅗㅎㅏㅁㅕ ㅅㅏㄹㄱㅔㅇㅛ.”(주님에 은혜로 낫게 되면 효도하며 살게요)

루게릭병(ALS·근위축성 측삭경화)으로 11년 동안 투병 중인 박승일(42) 전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코치.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희귀난치병으로 그는 전신근육 마비 상태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한 송이도 준비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답답해 잠을 못 이루다 8일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가 누나 성자(46)씨가 깨우는 바람에 간신히 눈을 떴다. 다른 날 같았으면 그냥 눈을 감을 수도 있었으나 이날은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과 누나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가슴과 머리로 쓴 사랑의 눈물 편지는 20여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완성됐다. 전신근육 마비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은 눈동자와 눈꺼풀뿐이다. 그에게 눈꺼풀이 펜이고 잉크는 맑은 눈동자다. 안구 마우스도 고장나 2년 동안 쓰지 못하고 있다. 대신 앞에 붙어 있는 글자판을 한 획, 한 획 눈꺼풀로 깜빡거리면 누나가 이를 보고 하나하나 받아 적는 방법으로 편지를 썼다.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노렸다. 2002년 국내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로 발탁된 박 코치가 누릴 수 있었던 행복감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어머니 손복순(73)씨는 아들을 위해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아들의 몸은 점점 돌덩이처럼 굳어질 뿐이었다.

2m가 넘는 거인은 종이인형처럼 누워 있기만 했다. 그냥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은 세상과 인연을 끊으려 혀를 깨무는 것이었다. “승일아, 그러지 마. 안돼. 네가 이렇게 무너지면 2000여명의 친구들은 어쩌라고….” 무릎을 꿇은 누나 모습을 본 동생은 차마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그날부터 둘의 눈꺼풀 대화는 시작됐다. “누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마침내 동생은 누나(분당우리교회)가 믿는 예수님을 그렇게 영접했다. 그리고 루게릭병 환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남매의 기도는 부모님 마음도 움직였다.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와 사업밖에 모르던 아버지 박진권(76)씨는 분당순복음교회에 함께 나가면서 마음의 평안을 회복했다. 또 다른 기적도 찾아왔다. 예전 여자친구도 극적으로 곁으로 돌아왔다. 박 코치는 더 이상 절망하지 않고 가수 션과 함께 ‘승일희망재단’(www.sihope.org·02-3453-6865)을 세워 루게릭병 요양병원 건립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승일희망재단은 내달 4일 오후 7시30분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홀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ing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는 개그맨 이홍렬씨가 사회를 맡아 다양한 공연을 펼친다. 또 재단의 공동대표인 가수 션과 배우 유지태씨도 팬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이번 행사의 입장권 판매 등 수익금은 루게릭병원 건립 기금으로 사용된다.

재단 상임이사인 누나는 이날 동생의 심정을 대신 전했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질병이라는데 동생은 ‘지금 살아 있는 것’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사랑이 절망을 이기고 기적을 낳습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